[음악에세이]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 |2007. 12.18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138, 완)

        성 플로리안 성당의 정문 안쪽, 파이프 오르간이 올려다 보이는 곳의 바닥에는 안톤 브루크너(Bruckner, Anton 1824-1896)라고 새긴 석판이 박혀 있었다. 묵념 후, 2층에 있는 장식품 같이 반짝이는 오르간을 올려다보니 브루크너 교향곡의 바탕인 광대하고 깊은 오르간 소리가 햇살처럼 퍼져 나올 것 같았다. 파이프가 무려 7천 개…

[음악에세이] 凋落의 고궁에서 |2007. 12.06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37)

        가는 햇살이 구석에 쌓인 낙엽더미에도 아른거린다. 이제는 순명하려는 순한 숨소리가 들릴 듯하다. 숲 저편에서 이름 모를 새의 목쉰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데 돌담 기왓장을 넘어온 단풍가지에는 선홍 이파리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채 상록수 이파리를 배경으로 황홀한 빛깔을 자랑한다. 만추의 한적한 고궁은 맑고 투명한 공기로 도회지의 멀미를 가시게 해…

할레의 트럼펫나무 |2007. 11.22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36)

      그 림 장 주 봉   헨델의 생가에는 친필 악보와 사용하던 악기, 생애와 작품에 대한 사진과 기록이 체계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품은 대충 둘러보고 마당 가운데 서 있는 트럼펫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단풍이 들어 누런 동그란 이파리들 아래로 국수가닥처럼 가는 줄기가 수없이 늘어져 있는 굵은 둥치의 거목으로 트럼펫나무라는 작은 명패만 붙어…

위로와 격려의 행진곡 |2007. 11.06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35)

행진곡을 들으면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위풍당당하게 개선하는 군인들의 행렬, 깃발을 앞세우고 멋있는 투구와 눈부신 전투복 차림의 장군과 군인들의 행렬이 입성하는 장면이 연상된다.그런데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이런 승리, 개선의 축하가 아닌 위로와 격려의 행진곡을 작곡했다. 1876년 러시아와 우호관계인 세르비아와 터키의 전쟁 때,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원조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확대되어 …

[음악에세이] 바람과 자유 |2007. 10.24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음악에세이(134)

        하늘빛이 청명해지면서 나무이파리를 흔드는 바람이 보일 듯하다. 바람은 어떤 구속이나 속박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좋다. 바람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향해가며 사람들을 부추긴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 받을 것을 열망하기도 하지만 어떤 장벽이나 소속과 무관한 자유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싶어 한다. 때로…

행복한 시간 |2007. 08.14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31)

슈베르트가 말년에 쓴 피아노 소나타 제21번(B플랫장조 작품960)을 듣노라면 그의 시(詩) '시간'의 구절이 생각난다. "끊임없이 시간은 흐른다 / 사랑하는 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인생 여정의 동반자 / 세월은 우리와 함께 무덤에 내려앉는다 / 단지 숨결...그것은 세월/...단지 울림... 그것은 세월...”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났던 슈베르트(Schuber…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걸작의 숲에서 |2007. 07.18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130)

    어두운 느낌의 피아노 연주로 도입부가 시작된다. 베토벤의 '합창환상곡'의 1부는 피아노 독주부분으로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이 힘 있고 유연하게 두 손으로 화음을 이루다가 오른 손만의 영롱한 울림이 몇 차례 반복된다. 크지 않은 키에 다부진 모습, 자유자재로 펼치는 환상적인 연주를 보면서 1808년 초연 때 베토벤(Ludwig van B…

영웅의 재생 |2007. 07.03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29)

어렸을 때 좋아한 역사적인 영웅이야기는 성장하면 우리 생활의 외곽으로 밀려나서 잊혀지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인물은 일찍 입력되어서인지 아주 사라지지는 않고 기억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가 이따금 재생되곤 한다. 예술가들은 감명 받은 역사적인 인물이나 전설 속의 영웅들을 자유로운 정신과 상상을 통해 작품 속에 재생시킨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고야의 '성 베드로',…

50년에서 영원한 울림으로 |2007. 06.20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28)

친척의 타계로 슬픔에 잠겨 있던 지난 봄,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 Mstislav 1927-2007)의 죽음도 충격이었다. 구소련에 속해 있던 아제르바이젠 태생의 로스트로포비치는 친구 솔제니친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련당국의 비난에 항의하다가 망명한 자유주의자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서베를린의 장벽 밑에서 고국의 자유를 위…

마지막 편지 |2007. 05.29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127)

슈베르트가 병상에서 세상 떠나기 일주일 전, 친구 쇼버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읽을 만한 책을 구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어려서부터 문학작품을 즐겨 읽고 시를 쓴 슈베르트(Schubert, Franz 1797-1828)는 집도 없고 가난했으나 사랑, 이상과 창작 의욕이 넘쳐 쓸쓸함을 느끼지 않고 맑은 영혼으로 명작을 쓰며 살았다. 7백곡이나 되는 가곡들을 작곡하여 '가곡의 왕'으로 불리기 때…

흐뭇한 협력자로 |2007. 05.16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 에세이(126)

웅대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3분이나 흘렀을까. 3중 협주곡의 세 악기 중 첼로가 먼저 화려한 독주를 선보이고, 다음엔 바이올린이 전력을 다해 미려한 소리를 뽑아낸다. 그리고 이어서 생동감이 넘치는 피아노 독주가 계속된다. 피아노 거장들의 연주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 우리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건반들이 손가락에게 신호를 보내면 손가락이 재빨리 터치해서 작렬하는 것처럼 신묘하게 느껴진다. 지…

배려와 느낌의 미학 |2007. 05.02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25)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은 <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몽땅 어깨에 짊어지고 끊임없이 산 위를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푸스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명대사를 비롯, 주목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는 얇은 책인데도 그 감명은 묵직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슈베르트(Schubert,Fra…

떠도는 구름 너머 |2007. 04.18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24)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 1756-1791)는 결혼을 반대했던 부친과 화해하려고 미사곡(c단조 K 427)을 써서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고향 잘츠부르크에 갔다. 이 작품은 성 베드로교회에 바치는 것이었는데, 부친 앞에서 자신의 지휘로 솔로부분을 아내에게 부르게 하여 부친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노여움을 풀지 않는 아버지를 두고 떠나올 때 모…

[유혜자의 음악에세이]금단의 물결 |2007. 04.04
[ 음악에세이 ]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는 가출하여 여성국극단을 따라갔다가 "공부를 다 마치고 오라"는 극단 대표의 충고에 돌아온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께 꾸중듣고 아이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때 나는 오히려 그들의 대담함이 부러웠다. 전창근(全昌根) 감독의 영화 '단종애사(端宗哀史)'를 보며 단종 역의 배우 황해남(黃海男)에게 마음이 끌렸었다. 내용도 슬펐지만, 한두 살쯤 위였을…

[음악에세이]햇볕 잘 드는 집에서 |2006. 12.06
[ 음악에세이 ]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극작가 슈니츨러에게 극작가 지망생이 희곡 한 편을 써 갖고 와서 평을 해달라고 했다. 슈니츨러(Schnizler, Arthur 1862-1931)가 며칠 후 다시 온 청년에게 종막(終幕)이 약하다고 하자, 청년은 마지막을 해피 엔드로 바꿀까 물었다. "그게 아니라 주인공이 자살할 바에는 탕 소리나는 권총으로 해야 졸고 있던 관객들을 깨울 게 아닌가. 이 원고처럼 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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