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에서 영원한 울림으로

50년에서 영원한 울림으로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28)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7년 06월 20일(수) 00:00
친척의 타계로 슬픔에 잠겨 있던 지난 봄,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 Mstislav 1927-2007)의 죽음도 충격이었다. 구소련에 속해 있던 아제르바이젠 태생의 로스트로포비치는 친구 솔제니친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련당국의 비난에 항의하다가 망명한 자유주의자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서베를린의 장벽 밑에서 고국의 자유를 위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고, 1990년 복권이 된 그는 몇 년 전 귀국하여 올해 3월 생일에는 푸틴 대통령의 초대도 받았으나 한 달 후 타계했다. 7년 전에 간암으로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마침 로스트로포비치가 16년 전에 녹화한 DVD를 볼 수가 있었다. 그가 15살 때부터 연습 중이던 바흐(Bach, Johann Sebastian 1685-1750)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64세가 되어서야 녹화했다는 DVD 앞에서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1991년 3월에 EMI음반 제작자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비공개로 녹화한 것이다. 서곡 (Prelude)을 비롯, 5개의 춤곡으로 된 모음곡 제1번은 신에게 바치려는 듯한 연주여서 그 어떤 기도와 설교보다 경건해 보였다.

선율이 단조로운 듯하지만 영혼과 감성을 담아 표현을 극대화한 선율에 그의 50년 세월이 녹아 있었다. 기쁨, 슬픔, 안타까움과 감사함 등. 첼로 주법 연습을 위한 단순한 무곡이지만 그가 연주하는 파장은 너무도 넓고 마음 깊이까지 울려와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난관을 극복한 그의 승리감과 함께, 느닷없이 젊은 나이에 떠난 친척의 죽음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득의만만한 생의 위대함까지 포괄한 장대하고 융숭한 깊이를 느끼며 "1천개의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보다 한 악기가 연주하는 바흐의 음악이 1천배나 더 감동스럽다. 음악은 침묵의 소리를 끌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는 어느 음악평론가의 말이 절감되는 것이었다.

첼로 전공자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소중하게 여기고 '첼로의 성서'로 부른다고 한다. 사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명연주, 파블로 카잘스의 CD를 갖고 있으면서도 세기의 명연주가들이 오랜 세월 연습하며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터득하고도 마음을 가다듬는 귀중한 음악의 엄청난 가치를 못 느끼게 될까봐 선뜻 CD를 못 들었다.

이런 귀한 음악을 하마터면 못들을 뻔했을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이 작품의 악보가 바르셀로나의 헌 책방 구석에서 2백 년 동안이나 먼지에 덮여 잠자고 있었던 것을 1889년 당시 열 세 살이던 파블로 카잘스(Casals, Pablo 1876-1973)가 구입했기에 이 음악의 가치는 물론 첼로음악사도 달라졌다. 어린 카잘스는 이 악보에 감탄하여 12년 동안의 연구와 연습 끝에 공개연주회로 세상에 알리고, 녹음하기까지 5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매일 연습하고, 연주 불가능한 부분을 수정, 보완하여 60세가 되어서야 녹음하기 시작, 63세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선배 카잘스처럼 40여 년 동안 연습한 뒤에야 녹화할 용기를 얻은 로스트로포비치는 녹화할 성스러운 장소를 오랫동안 물색 끝에 프랑스 남부 욘느(Yonne)에 있는 성 마드랭성당을 택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묵상, 수도하는 자세로 녹화했다. 녹화를 마친 후 그는 "이제야말로 나는 첼리스트로서의 사명을 다했다"고 했다.

바흐가 살던 당시 첼로는 바탕에 깔리는 반주 역할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괴텐 궁정악단에서 함께 일하던 첼리스트 페르디난트 아베르의 명인적인 연주 능력을 믿었기에 불후의 명곡이 탄생된 것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전 6곡으로 되어 있고 각곡마다 6악장으로 이뤄졌는데, 제1번 한곡만 감상한 것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전력을 다하는 연주가 어떤 기원이라도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감동을 주었다.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가 녹음, 녹화하기까지는 40년, 5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그들의 연주는 세월의 단위를 뛰어넘어 영원한 울림으로, 감동으로 눈물과 함께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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