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구름 너머

떠도는 구름 너머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음악에세이(124)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7년 04월 18일(수) 00:00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 1756-1791)는 결혼을 반대했던 부친과 화해하려고 미사곡(c단조 K 427)을 써서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고향 잘츠부르크에 갔다. 이 작품은 성 베드로교회에 바치는 것이었는데, 부친 앞에서 자신의 지휘로 솔로부분을 아내에게 부르게 하여 부친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노여움을 풀지 않는 아버지를 두고 떠나올 때 모차르트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어쩌면 그의 아버지도 자식이 탄 마차가 안 보일 때까지 내내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기대에 못 미치는 여인과 결혼해버린 아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냉대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어린 시절부터 부친, 누나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던 모차르트는 열 여섯 살이 되자 아버지와 함께 1781년까지 잘츠부르크 성당에서 일했다. 대주교 콜로레도는 음악가 부자를 하인처럼 다루어 모차르트는 틈만 나면 그를 피해 여행을 다녔다. 대주교, 관리들과 의견차이로 반목을 이루던 모차르트는 1781년에 잘츠부르크 성당을 떠나 빈으로 온 처지였었다.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찐트>에서 페터는 외딴 마을에서 산과 바람, 구름에 몰두해 자라면서 "구름은 분노이고 죽음을 이겨내는 힘이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실세계로부터는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지닌 채 방황한다. 모차르트 역시 2년만에 찾은 고향에서 작은 소원도 못 이루고 빈을 향하며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구름을 보고 바람에 의탁하며 자신을 찾아 헤맨다. 자신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성공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아버지, 호기심이 많았던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유럽 등 여행에서 음악을 배우던 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변화하는 구름을 보며 미래가 불안하면서도 낙천적인 그는 현실을 초월해서 구름처럼 떠다니고 싶고 화려한 내일도 꿈꾸었으리라. 그러나 소외감에서 오는 짙은 고독도 느꼈을 것이다. 그의 많은 음악이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밝은 감흥을 자아내면서도 때때로 비애감과 고독이 배어 나오는 듯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두운 마음으로 빈으로 향하던 길에 린츠에 들른 그에게 행운의 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에 모차르트 부부를 좋아한 '툰' 백작은 닷새 후에 열릴 음악회에서 교향곡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미 모차르트는 35개의 교향곡이 있지만 그곳에는 악보가 없었다. 긴박한 때야말로 천재성이 발휘됨을 교향곡 36번 '린츠'(C장조, K425)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부지런히 곡을 써서 사보(寫譜), 연습까지 사흘 반만에 초연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 작품은 단 시일에 완성된 것으로 유명하지만 모차르트 특유의 신선함과 힘찬 리듬, 박력이 있어서 고전적인 격조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이전의 교향곡처럼 하이든의 영향이 느껴지면서도 사색적이고 고고한 분위기의 견실한 구성으로 모차르트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음악이다. 비극적인 면과 낙천적인 면, 두 세계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갈등의 시기를 일단락 지으려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작품인 제38번 교향곡 '프라하'를 비롯한 모차르트 3대 교향곡의 발전은 이 린츠 교향곡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그윽한 안단테의 제2악장은 상쾌하고 우아한 표정을 지닌 주제를 약하게 혹은 강하게 반복하면서 발전하는 악장으로 모차르트의 전 교향곡 중 가장 아름다운 느린 악장으로 꼽힌다. 제1악장은 모차르트의 다른 교향곡과는 다르게 아다지오의 서주로 시작되어 알레그로의 주부(主部)에 들어가면 행진곡풍 리듬의 제1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중간부분이 오보에와 현으로 아름답게 연주되는 메뉴엣의 제3악장, 제4악장은 프레스토의 매우 빠른 템포로 변하면서 활발하게 전개되어 박력 있게 끝난다.

사흘만의 완성품, 교향곡 '린츠'를 듣는다. 방랑과 허무, 그리고 구름 너머 동경을 보냈을 모차르트의 세계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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