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마지막 편지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127)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7년 05월 29일(화) 00:00
슈베르트가 병상에서 세상 떠나기 일주일 전, 친구 쇼버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읽을 만한 책을 구해달라는 내용이 있다.

어려서부터 문학작품을 즐겨 읽고 시를 쓴 슈베르트(Schubert, Franz 1797-1828)는 집도 없고 가난했으나 사랑, 이상과 창작 의욕이 넘쳐 쓸쓸함을 느끼지 않고 맑은 영혼으로 명작을 쓰며 살았다.

7백곡이나 되는 가곡들을 작곡하여 '가곡의 왕'으로 불리기 때문에 그의 출중한 실내악이나 교향곡의 존재가 약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작곡가 자신도 교향곡 제8번 '미완성'과 제9번 '더 그레이트'(The Great)를 듣지 못하고 타계했다. 8번은 작곡직후 시타이어마크 음악협회 임원 휘텐브레너에게 악보를 보냈는데 2악장뿐이어서 나머지 악장을 보낼 줄 알고 묵혀뒀다가 잊혀졌었다. 9번은 작곡 직후 오스트리아 음악협회에 가서 상연을 부탁했는데 거창하고 길어서 거절당했던 것을 후배 음악가 슈만에 의해서 11년 만에 그 생명을 얻게 되었다.

   
슈만은 존경하던 슈베르트의 묘소를 찾았다가 허무해서 슈베르트가 마지막 3개월을 함께 살았던 형 페르디난트를 찾아갔다. 페르디난트가 보여주는 슈베르트의 유품인 예복, 오선지와 안경 등을 보던 슈만은 책상 위에서 먼지에 뒤덮인 채 놓여 있는 교향곡의 원고를 발견했다. 그것은 슈베르트가 죽기 아홉 달 전에 완성한 곡이었다. 그는 이 교향곡을 완성하고는 평소에 겸손한 그답지 않게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난 이제 가곡을 그만 쓰기로 했네. 이제부터는 오페라와 교향곡에 주력할 작정이네."라면서 이곡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다. 이 교향곡은 별칭 '대교향곡'((The Great, c단조 D.944)으로 불릴 만큼 대규모의 작품으로 외향적이고 밝고 당당하다. 절묘한 관현악의 색채, 서정적 선율의 아름다움으로 듣는 이를 압도한다. 슈베르트 정서의 최고봉이라는 1악장, 몽환적 아름다움의 2악장,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생기발랄한 3악장 그리고 힘차고 생명력에 불타는 4악장 등 자랑할만한 이 음악이 슈베르트 생존시에 연주되었더라면 그의 사기가 진작되어 좀더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가진 것이 없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활기를 돋구어주던 좋은 성품의 슈베르트는 1734년부터 치명적인 병으로 비통해하며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이 교향곡보다 1년 전에 완성한 연가곡집 '겨울 여행'은 실연한 젊은이가 황량한 세상을 희망 없이 구경하고 다니는 빌헬름 뮐러의 시(詩)이지만, 슈베르트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그는 질병의 고통으로 낭만적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도 접고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그러나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이해와 고통을 통한 산물이다. 적어도 세상을 기쁘게 하는 작품들은 고통을 통해 배출되는 것들이다"며 창작 의욕으로 다시 일어섰다.

1738년, 슈베르트가 타계한 해 봄에는 <슈베르트 연주회 designtimesp=24831> 행사가 큰 성공을 거둬 금전적으로 넉넉해져서 피아노도 사고 한 때 건강도 좋아져서 새로운 용기와 창조력으로 9번 교향곡 같은 대작을 낳을 수 있었다.

이 대작의 악보를 멘델스존에게 보내어 초연을 하게 했던 슈만이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슈베르트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이 속에는 당당한 음악상의 작곡 기술 말고도 갖가지 다채롭기 비할 데 없는 생명이 나타나 있으며, 도처에 깊은 의의가 담겨져 있고, 낱낱의 소리가 날카로운 표현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슈베르트 고유의 로맨티시즘이 흐른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 음악이야말로 슈베르트가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음악편지가 아닌가. 의기소침하고 어둠에 빠져드는 이에게 '다채롭기 비할 데 없는 생명'을 나타내고 '도처에 깊은 의의'를 담고 당당하게 살라고 부추기는 듯한 음악이다.

음식도 넘길 수 없는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읽을 책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쓴 슈베르트, 생명력에 불타는 9번 교향곡에 담긴 사연을 생각하며 우리도 마지막 편지에 써야 할 사연을 연구해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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