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제네바/개신교 신앙을 택하다 |2016. 05.17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1536년 5월 21일, 스위스 연방 서쪽 끝에 자리잡은 제네바 시에서 시민총회가 모였다. 당시 시민의 수는 1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당시에는 큰 도시였다. 오랜 시일 신앙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도시의 주민들이 이날의 회의에서 개신교 신앙을 택하기로 분명하게 결의하였다. 깔뱅이 쥬네브에 도착하여 개혁자로서 사역을 시작하기 3개월 전의 일이었다. 제네바가 신앙적인 선택을 새롭게 결의한 것은 종교…

(16) 암스도르프/루터의 동료이며 계승자 |2016. 05.10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암스도르프(1483-1565)가 5월 14일 사망했다. 루터의 동료로서 평생 최측근으로 사역했고 루터 사망 이후에는 그의 신학 전통을 지키느라 헌신했다. 그의 어머니는 루터의 멘토에 해당되는 슈타우피츠와 한 집안이었다.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루터의 동료로서 종교개혁을 주도했다. 루터에 비해 20년 가까이 장수했기에 그는 개혁의 계승자가 되어 루터의 뜻을 고…

⑮ 현공 프리드리히 선제후 |2016. 05.03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비텐베르크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1463-1525)가 5월 5일 사망하였다. 그는 온화하고 의로운 성품으로, 살아있을 동안 지혜로운 영주라는 별칭을 얻었다. 1486년에 부친을 계승하여 작센 선제후가 되었다. 바로 그 전 해에 작센은 둘로 나뉘었고, 그의 아버지인 에른스트가 선제후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알브레히트는 공작이 되어, 정치적인 영향력은 다소 작지만, 드레스덴과 라이프찌히 등 좋…

⑭ 요하네스 부겐하겐 |2016. 04.19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1528년 4월 28일 독일 북부의 도시 함부르크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이 과제는 요하네스 부겐하겐(1485-1558)에게 맡겨 졌다. 그는 교회규율(Church Order)을 제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이듬해에 완성된 교회규율은 함부르크의 교회를 새롭게 하고 복음 즉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한 교회로 거듭나도록 만들었다.  새롭게 작성된 교회규율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핵…

⑬ 페르디난트 |2016. 04.12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1529년 4월 19일 슈파이어에서 모인 제국의회에서 황제의 친동생이자 대리인 페르디난트는 신앙의 이탈을 묵과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처사에 불만을 품은 제후 6인과 제국직할의 자유시 대표 14인이 연명으로 항의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여기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유래하였고 오늘날에도 개신교를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황제 칼 5세는 효율적으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⑫ 낭트 칙령 |2016. 04.05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프랑스가 위그노를 인정

프랑스 왕으로 1598년에 등극한 앙리 4세는 4월 13일 개신교의 권리를 인정하는 칙령을 선포하였다. 이 칙령은 지명을 따라서 낭트칙령이라 불리운다. 수도인 파리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위그노의 신앙을 용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오랜 세월에 걸친 신구교의 전쟁이 마무리되었으며, 개신교는 프랑스에서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독일어에서 맹세한 동지라는 뜻의 아이드게노쎈이 프랑스지역에서는 음역…

예술가의 감성, 신앙인의 영성 |2016. 03.29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12)뒤러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르네상스 시대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였다. 유독 종교개혁 시기에 독일에서 걸출한 화가들이 활약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새롭게 펼쳐지는 신앙과 신학을 이해하고 형상화한 크라나흐와 그뤼네발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미디어라 평가되던 인쇄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영역에서 목판이나 동판을 활용하는 기법이 더불어 발전하였다. 이러한 분야에서 뒤러는 뛰어난 창의성…

⑪ 모리츠 |2016. 03.22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모리츠 배신을 거듭하다

모리츠 (1521-1553)가 3월 21일 태어났다. 30여년 짧은 삶이지만 그는 종교개혁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제1세대의 제후 중에서 야심을 품고 개혁진영을 주도하던 헤쎈의 필립이 그의 장인이었다. 작센 공작령은 이미 필립 남매와의 교차결혼을 통하여 이중으로 엮인 상태였다. 모리츠가 필립의 딸과 결혼하면서 이제 세 번째로 작센은 헤쎈과 결합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는 공작일 뿐 선제후가…

⑩ 페르디난트 1세 프랑크푸르트서 시작된 화해 |2016. 03.17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155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가 황위를 아우에게 물려주고 수도원으로 칩거하였다. 독일에서 시발된 종교개혁의 운동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해결되지 못했다. 제후들은 세속의 욕망을 드러내고, 노선을 바꾸며 배신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이에 진저리가 난 황제는 은퇴를 선언하였다. 황제의 지위는 페르디난트 1세(1503-1564)가 이어받았다. 1558년에 새 황제는 아헨에서…

개혁의 방향과 속도 조정⑨ 루터의 종교개혁 기본강령 |2016. 03.09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1520년에 루터는 종교개혁의 기본 강령에 해당되는 세 문서를 출간하였다. 다음 해에는 보름스에서 소집된 제국의회에 루터는 출두하여 주장을 철회하도록 강요되었다. 개혁자는 이를 거부하였고, 황제는 제국추방의 영을 내려 더 이상 공권력이 보호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루터는 귀환하지 못하고 일년 가까이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은거해야 했다. 비텐베르크에서는 루터가 없는 사이에 개혁이 진행되었다. …

일루리곤에서 온 개혁자 |2016. 03.02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⑧ 마티아스 플라키우스

마티아스 플라키우스(1520-1575)가 3월 3일 출생하였다. 출생지를 따라 일리리쿠스라 불리웠는데, 신약에도 일루리곤<사진>이라고 나오는 지역은 예전에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었던 곳이다. 그는 젊었을 때 비텐베르크에서 공부하였다. 생애 말년의 루터 그리고 멜랑히톤으로부터 촉망받는 신학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가 활약하기 시작한 초창기는, 개혁진영이 심하게 수세에 몰렸던 때였…

마틴 루터의 장례식 |2016. 02.23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마틴 루터는 1547년 2월 18일 별세하였다. 어려운 갈등을 조정하기 위하여 아이슬레벤을 방문하였다가 사망한 것이다. 그는 이 마을에서 출생하였으니, 마지막 순간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맞이하였다. 그래서 아이슬레벤은 개혁자의 출생지인 동시에 임종지로,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그 두 집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2월 22일 장례식이 비텐베르크에서 거행되었다. 우리 예법으로 세어보면 …

(6) 멜랑히톤/현대식 대학교육의 초석을 놓다 |2016. 02.17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멜랑히톤(1497-1560)이 2월 16일 독일 서남부의 작은 도시 브레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주목을 받았으며, 나이가 적어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거절될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 새롭게 창설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고전어 교육을 위해 당시 독일의 최고 인문주의자 로이힐린을 초빙하였다. 그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양했으며, 대신 멜랑히톤을 추천하였다. 두 사람이 먼 인척이라고 …

요한 에크 |2016. 02.02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천주교의 입장 고수

에크(1486-1543)는 루터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는데, 2월 10일 사망하였다. 마이어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 이름은 출생한 마을에서 온 것이다.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교수로 평생 일하면서, 로마천주교의 입장을 옹호하는 입장에 섰다.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교리논쟁에서 그는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라이프찌히 논쟁에서는 칼슈타트와 루터를 대적하였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

성공한 발명가, 사업에는 실패 |2016. 01.27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구텐베르크(3)

1468년 2월 3일 구텐베르크가 마인쯔에서 사망하였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기술자로서 많은 것을 창안하였다. 인쇄술을 발명하여 라틴어 성서를 인쇄하였다. 한 페이지에 42행을 인쇄하였기에 '42행 성서'로 불리운 작품인데, 1455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 성공을 맛보지는 못하였다. 경영의 어려움은 법정투쟁으로 이어졌는데, 이기지 못하였다. 큰 빚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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