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페르디난트

⑬ 페르디난트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김인주 목사
2016년 04월 12일(화) 15:25

1529년 4월 19일 슈파이어에서 모인 제국의회에서 황제의 친동생이자 대리인 페르디난트는 신앙의 이탈을 묵과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처사에 불만을 품은 제후 6인과 제국직할의 자유시 대표 14인이 연명으로 항의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여기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유래하였고 오늘날에도 개신교를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황제 칼 5세는 효율적으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유럽 내부에도 경쟁자들이 여럿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밖에서는 이슬람이 세력을 확장하며 위협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신앙의 문제 혹은 교회분열이라는 주제는 화급한 과제로 다를 상황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운 결정을 더구나 신앙적인 선택의 문제가 결부된 주제에서 황제를 대신하여 흡족스런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페르디난트는 분위기를 무시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권력구조에서 제2인자가 자주 범하게 되는 우유부단함이 사태를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1526에 모인 제1차 슈파이어 의회에서 페르디난트는 개혁 진영의 제후들에게 관용을 약속하였다. 황제는 이를 보고받고는 노발대발 하였다. 3년 후 이슬람의 공세가 거세지자 다시 의회를 소집하여야 했다. 전쟁비용을 영주들이 부담한다고 약속해야만 제국이 유지될 수 있는 형편이었다. 황제의 대리인은 무리한 줄 알면서도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제후들의 3년 전 확보한 교두보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개혁 진영은 약속을 지키라며 거스를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었다. 
 <봉성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