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제네바/개신교 신앙을 택하다

(17) 제네바/개신교 신앙을 택하다

[ 김인주 목사의 이주의인물 ]

김인주 목사
2016년 05월 17일(화) 15:29

1536년 5월 21일, 스위스 연방 서쪽 끝에 자리잡은 제네바 시에서 시민총회가 모였다. 당시 시민의 수는 1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당시에는 큰 도시였다. 오랜 시일 신앙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도시의 주민들이 이날의 회의에서 개신교 신앙을 택하기로 분명하게 결의하였다. 깔뱅이 쥬네브에 도착하여 개혁자로서 사역을 시작하기 3개월 전의 일이었다.

제네바가 신앙적인 선택을 새롭게 결의한 것은 종교적인 이유보다 정치적인 원인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 스위스 연방에 속하였다고 하지만 오랫 동안 자유를 누려온 시민들은 천주교 신앙을 강요하는 주교나 귀족들에게 승복하지 않았다. 베른이나 프리부르 등과 동맹을 맺고서, 그 영향을 받고 있었고 타 지역의 개혁상황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바젤과 베른에서 시작된 개혁의 물결이 쥬네브에도 흘러들어왔다. 신앙의 이유로 프랑스를 떠나 난민으로 제네바에서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532년에는 파렐, 올리베땅, 소니에 등이 방문하였다. 그러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겨우 피신하여 도망하였다. 몇 차례의 소요와 폭동, 유혈사태가 반복되면서 점차 개혁을 지지하는 시민이 늘어났다. 혼란을 기회로 삼고 프랑스가 군대를 파견하고 제네바를 지배하려 했지만 시민들은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파렐은 1534년 초에 다시 제네바에 들어섰다. 그의 설교는 점차 호응을 얻었고, 1536년에 시의회는 천주교 미사를 폐지하였다. 도덕적 갱신을 위하여 도박과 주류 판매가 금지되었다. 모든 가게가 주일에는 문을 닫고, 주일을 성수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시민총회는 개신교 신앙을 택하였다. 당시 목사는 고작 1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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