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은혜 충만 |2011. 08.10
[ 나의삶나의신앙 ]   <나의삶나의신앙> 계준혁장로(1)

    ▲ 계준혁장로의 중학교 시절 가족사진(1942년). 앞줄 맨 오른쪽이 계 장로. 계준혁염천교회 원로장로장로교육원 명예이사장 지난 5월 어느날. 여느 때와 똑같은 평온한 아침이었다. 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종로의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차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급발진을 해 건물 기둥을 향해 돌진했다. 워낙 순식간에…

나의삶 나의신앙- 이흥래장로<完> |2011. 07.20
[ 나의삶나의신앙 ]   

    ▲ 이흥래장로는 심근경색으로 2번 쓰러졌지만 최근에도 러시아 전역을 돌며 전도를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 사진제공 이흥래장로 "괜찮으세요?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요."2006년 여름이었다. 선교 동역자들이 나에게 건강 상태를 계속 물었다. 주말마다 20시간 이상 기차를 타거나 승용차를 이용해 개척교회를 돌아보니 걱정이 됐나보다.아니나 다를까. 그해…

나의삶 나의신앙- 이흥래장로<4> |2011. 07.14
[ 나의삶나의신앙 ]   

    ▲ 이흥래장로 가족은 러시아에서 선교를 같이 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선교 열정이 이흥래장로 못지 않다./ 사진제공 이흥래장로 모스크바장신대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정규대학 인가를 받은 것에 대해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일련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기도로 후원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고백한다.돌이켜 보면, 모스크바장신대 설립은 나…

나의삶 나의신앙- 이흥래장로<3> |2011. 07.11
[ 나의삶나의신앙 ]   

    ▲ 이흥래장로의 러시아 선교는 신학교 설립으로 본격화됐다. 1993년 1월 14일 열린 모스크바장신대 설립식을 겸한 첫 입학식을 통해 14명의 학생이 입학을 했다./ 사진제공 이흥래장로 시골을 돌며 '영화 전도'를 하다보니 신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수련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깊이 있는 신앙 무장이 필요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마침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나의삶 나의신앙- 이흥래장로<2> |2011. 07.01
[ 나의삶나의신앙 ]   

    ▲ 젊은 시절 섬 목회를 통해 혹독한 전도훈련을 받은 이흥래장로는 혹한의 땅 러시아에서 '1만명 전도' 결실을 맺었다./ 사진제공 이흥래장로 거문도에서 목회를 하며 전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1만명 전도'를 자신있게 외쳤던 패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도무지 복음을 확신있게 전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 낯선 섬에서 문화적 이질감을 느낀 것…

나의삶 나의신앙- 이흥래장로<1> |2011. 06.27
[ 나의삶나의신앙 ]   

    ▲ 순천성경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이흥래장로(사진 뒷줄 오른쪽 네번째). 이 장로는 2학년 때 '1만명 전도'를 서약했다./ 사진제공 이흥래장로 "나와 같이 평생 5만명 전도할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안계십니까? 그럼 4만명.. 3만명.. 2만명..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1만명 전도할 사람 손들어 주십시오."정적이 흘렀다. 그 때 나도 모르게 벌…

"교회가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돌봐야 합니다" |2011. 06.22
[ 나의삶나의신앙 ]   주선애교수의 삶 이야기(完) "북한선교는 미래 위한 투자"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이 싫어서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다. 신앙의 뿌리를 평양에 두고온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동양의 예루살렘인 평양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꿈 꾸는 노인'인 나는 생애 마지막 사명이라 생각하고 탈북자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늘 내게 사람을 보내주셨다. 탈북자 사역을 시작할 때도 황장엽 선생을 만나게 하셨다. 평생 가르치는…

30대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부터 대한YWCA 회장까지... |2011. 06.22
[ 나의삶나의신앙 ]   주선애교수의 인생 이야기(3) "여성운동에 매진 했던 행복했던 시간들"

주님을 만난 뒤부터 무엇이나 나에게 요청해 오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순종하겠다고 기도했다. 주변 사람들은 왜 'NO'라고 하지 못해 늘 고생 하느냐고 핀잔하지만 난 주님과의 약속을 어길수가 없기 때문에 일정이 겹치지 않는 이상 여러 요청들을 수락해 왔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총회의 결의에 따라 여전도사들을 교육할 수 있는 초급대학 과정을 개설하는 일을 맡…

기독교교육의 여명기, 그 텃밭을 일구다 |2011. 06.22
[ 나의삶나의신앙 ]   주선애교수의 삶 두번째 이야기, 한국 기독교교육의 개척자

나의 꿈은 본래 일본의 동경여자사범대학이나 서울의 이화여자전문학교 진학하는 것이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극구 말리시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마침 1946년 평양신학교에 여자 신학부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난 주저없이 입학을 했다. 물론 교역자가 되겠다는 소명보다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독교교육…

"순식간에 지나간 삶, 탈북자 위한 여생 살고파" |2011. 05.31
[ 나의삶나의신앙 ]   꿈꾸는 노인인 것이 행복하다는 주선에 교수의 이야기<1>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다. 하지만 두고 온 동양의 예루살렘, 평양은 회복되어야만 한다. 그곳에 김일성의 초상화 대신 교회들을 세우고 평화의 도시를 만들고 우렁찬 찬송을 부르며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싸매주는 날을 나는 꿈꾸고 있다. 성령께서는 젊은이들에게 환상을 주고 늙은이들에게는 꿈을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꿈꾸는 노인이 된 것…

"섬기고 나누고 봉사하라" |2011. 05.18
[ 나의삶나의신앙 ]   조용근장로(5)

조용근장로새로운교회ㆍ세무법인 석성 회장  지난 2004년 12월 31일부로 나는 35년 6개월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마지막 직함은 대전지방국세청장이었다. 사실 정년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하에 기쁜 마음으로 결정했다. 사실 은퇴 후 무엇을 할 지 정확하게 결정해놓은 상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 진로를 여쭙기 위해 아내와 함께 2005년의 첫날부터 기…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2011. 04.27
[ 나의삶나의신앙 ]   <나의 삶 나의 신앙> 조용근장로(3)

조용근장로새로운교회ㆍ세무법인 석성 회장 형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입대를 했지만 군 생활은 쉽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입대를 했더니 한참 동생뻘의 고참들과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군생활 중 정말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은 어머니께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돌아가신 사건이었다. 5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셨던 분이셨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항상 기도로 자녀들…

<나의삶 나의 신앙2> 석성 장학재단 통한 가난한 이들 섬김 |2011. 04.20
[ 나의삶나의신앙 ]   

조용근장로새로운교회ㆍ세무법인 석성 회장 아버지가 돌아온 후에도 우리 가족은 가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번 돈으로 '그리무(크림)'와 '비로드' 옷감을 사가지고 들어오다가 세관에 걸려 모두 빼앗기고 빈 몸으로 돌아오셨다. 당시 우리 가족들은 옷 한벌로 한 계절을 버텨야 했고 늘 배가 고팠다. 이런 현실 속에서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절에 다니며, 늘 집안이 잘되게 해달…

"쟁취와 투쟁이 삶의 정답인줄 알았죠" |2011. 04.13
[ 나의삶나의신앙 ]   <1>세무법인 석성 대표 조용근장로

서울 2호선 교대역 부근에 위치한 세무법인 석성의 회장 집무실. 나는 책상에 앉으면 앞쪽에 놓인 성경구절이 새겨진 액자 하나를 잠시 바라보곤 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비록 수백 수천번을 보는 말씀이지만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는 하나님의 편지처럼 느낀다. 이 말씀처럼 나는 항상, 그리고 범사에 기뻐하고 …

나의삶 나의신앙- 홍희천장로<완> |2011. 02.28
[ 나의삶나의신앙 ]   

    ▲ 총회 부회계로 활동하던 모습(左). 사진 맨 우측은 당시 서기였던 현 총회 부총회장 박위근목사. 2009년 창동염광교회 시무장로를 은퇴하며 성도들 앞에서 소감을 밝힐 기회가 있었다. "70년 인생 여정을 돌아보니 너무 행복했다. 하나님 은혜를 한량 없이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술회했다. 그렇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내 행복의 기준은 '온전한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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