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 나의삶나의신앙 ] <나의 삶 나의 신앙> 조용근장로(3)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04월 27일(수) 10:02

조용근장로
새로운교회ㆍ세무법인 석성 회장

형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입대를 했지만 군 생활은 쉽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입대를 했더니 한참 동생뻘의 고참들과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군생활 중 정말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은 어머니께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돌아가신 사건이었다. 5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셨던 분이셨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항상 기도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좋은 영향력을 주셨던 분이셨다. 그 슬픔 속에서 나는 어머니가 평소 하셨던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군대에서 전역을 한 후 나는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했다. 사실 부모님이 의좋게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결혼에 대해 그다지 좋은 생각을 갖지 못했었다. 그러나 33세 되던 해 여동생의 중매로 지금의 아내 류영혜를 만나 1980년 결혼을 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에 열심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 류 권사는 지금까지 집안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아내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결혼 후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중 종합검진을 받으신 아버지마저 식도암 진단을 받으셨다. 암이라는 병보다도 아버지가 예수를 믿지 않는 채로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걱정스러웠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타박하셨던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셨다. 전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교회에 가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교회 출석 후 세례를 받으신 아버지는 이후 1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삶의 마지막 1개월 동안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찬양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거주하시던 집과 재산을 정리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일을 처리하고 나니 5천만원이 남았다. 나는 이 돈을 귀하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천국에 가신 부모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분은 평생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恨)을 갖고 사셨다. 두분과 같이 배우지 못한 한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 없도록 장학재단을 세우기로 했다. 아버지의 존함 조석규, 어머니의 존함 강성이의 가운데 글자를 하나씩 따서 '석성'이라는 이름의 장학회를 만들었다. 나는 이 장학금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재테크를 했다. 2005년 재단법인으로 등록할 때는 5천만원이 2억2천만원으로 불어나 있었고, 여기에 내 사비를 보태 3억원으로 재단 운영을 시작했다. 장학금을 주는 기준은 딱 한가지였다. 가난으로 인해 배움이 어려운 이들이 장학금의 수혜 대상이었다.
 
석성장학재단은 현재 내가 운영하는 세무법인 석성에서 매출의 일정액을 출원하고 기부를 받아 현재 16억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학재단을 하다보면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석성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이들 중에는 사회에 진출해 또 다른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장학금을 보내주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면 나눔의 힘이 얼마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만드는가에 대해 놀라게 된다.
 
나눔은 또한 일종의 중독인 것 같다. 나는 내 책상에 철제 저금통 하나를 두기로 했다. 여기에 오가며 돈을 집어넣었더니 대략 3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30년 전의 금액이니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나는 이 금액도 불우청소년에게 전달했다. 이러한 버릇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늘 강권하다시피 해 기부를 하게 만든다. 몇년 전부터는 다일공동체에서 진행하는 필리핀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후원하기 위해 저금통 하나를 늘렸다. 아동 1인당 구개열 수술을 하는데 2백50만원 정도가 드는데 매년 4~5명의 아이들을 수술해줄 수 있는 금액이 모금된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나눔 중독에 빠져볼 것을 권한다. 장담하건데 반드시 행복에 중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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