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삶 나의신앙- 홍희천장로<완>

나의삶 나의신앙- 홍희천장로<완>

[ 나의삶나의신앙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1년 02월 28일(월) 13:30
   
▲ 총회 부회계로 활동하던 모습(左). 사진 맨 우측은 당시 서기였던 현 총회 부총회장 박위근목사.
2009년 창동염광교회 시무장로를 은퇴하며 성도들 앞에서 소감을 밝힐 기회가 있었다. "70년 인생 여정을 돌아보니 너무 행복했다. 하나님 은혜를 한량 없이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술회했다.
 
그렇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내 행복의 기준은 '온전한 믿음'에 있다. 사업 전성기에 부(富)가 쌓이면서 자칫 재물의 유혹에 빠질 수 있었지만, 집착을 버리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 기도했다.
 
재물이 많아도 걱정과 근심이 있기 마련이다. 움켜쥐어 무엇하겠는가. 정직하게 벌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정직하게 쓸 때 마음에 평안과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아내 김홍숙권사는 나보다 더 적극적이다. 창동염광교회 교인 초창기 시절, 철탑을 세우고 전자오르간을 위한 헌금을 할 때부터 시작해 이후 줄곧 목적헌금 시에 내가 망설임만 보이면 배포 두둑한 믿음을 권유했던 아내다.
 
우리 부부는 이러한 정신을 외동딸 혜원에게도 교육시켰다. 어려서부터 '욕심은 절대 금물'을 가르쳐왔다. 최근에는 별도의 유산 없이 내 재산 모두를 선교에 활용할 계획이 있음을 전한 바 있다. 신앙유산이 재물유산보다 값진 것임을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몸소 배웠다. 그 뜻을 딸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요즘 지인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좀 쉬라'는 얘기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혈압이 높은데다 2007년 1월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 필리핀과 북한 선교, 장학사업에 대한 비전이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우선 사업체를 정비해야 한다. 사실 용천노회장과 남선교회전국연합회장을 거쳐 총회에서 회계, 재정부장, 감사위원장 등을 하면서 사업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었다.
 
결코 후회는 없다. 이 모든 직책들도 여러 번 고사했지만 믿어준 분들을 위해 맡았었다. 어찌됐든 부족한 종이 노회와 총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필리핀 선교에 대한 열망은 친동생 때문에 싹텄다. 목회자인 막내동생이 필리핀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데, 정부 인가 신학교와 교회를 세우는 등 현지 복음화에 전력을 쏟고 있다. 이곳에 지속적인 후원을 할 예정이다.
 
북한 선교는 남선교회전국연합회장 당시 평양 봉수교회 건축 합의를 이끌어내며 관심을 가지게 됐다. 북한의 처소교회 방문 후 "성령의 역사가 북한에 임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후 북한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북한 선교는 매일의 기도제목이기도 하다.
 
또한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접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역을 조만간 진행할 예정이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만약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자산을 처분하지 못하면 현물 출자를 해서라도 장학사업은 성취시킬 것이다.
 
이 모든 열망을 하나씩 하나씩 현실화하다 하나님 곁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한다. "하나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멘."
 
홍희천
창동염광교회 원로장로 / (주)동원 대표이사
<정리=신동하기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