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움을 넘어 '따듯함'을 향해가는 청년, 커쇼

뜨거움을 넘어 '따듯함'을 향해가는 청년, 커쇼

[ MLB 커쇼가 사는 법 ] <7>

소재웅 전도사
2019년 10월 05일(토) 09:00
/ 커쇼 인스타그램. 왼쪽 뒤로 류현진 선수도 보인다.
커쇼가 경의를 표했던 라이벌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감독 브루스 보치(사진 가운데)가 경기 전 리포터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그 남자들이 보여준 마지막 승부

미국프로야구에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팀들이 있다. 넓은 미국 땅에서도 동부쪽을 보자면 뉴욕양키스(뉴욕 연고)와 보스턴 레드삭스(보스턴 연고)가 있다. 서부로 눈을 돌리자면 클레이튼 커쇼와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이 속한 LA다저스(LA 연고),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샌프란시스코 연고)가 있다. 최근 5년 정도의 성적만 보자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LA다저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의 라이벌간의 경기는 최근 성적 같은 게 큰 의미가 없다. 객관적인 전력이 뒤져도, 라이벌 팀만 만나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게 스포츠의 특성이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국가대표축구 한·일전만 봐도 그러하지 않던가.

지난 9월 30일(한국시간 기준)에는, 아주 멋있는 장면이 등장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상징적인 투수였던 매디슨 범가너와 클레이튼 커쇼가 그 주인공이었다. 올시즌을 끝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떠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매디슨 범가너가 타석에 등장(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감독의 배려로 등장)하자, 마운드에 있던 클레이튼 커쇼는 일부러 포수와 야수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정들었던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하는 매디슨 범가너에게 충분한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매디슨 범가너는 모자를 벗고 손을 뻗어 팬들을 향해 여유있게 인사할 수 있었다.

이날 커쇼와 범가너는 볼 카운트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까지 가며 명승부를 펼쳤다. 커쇼는 타자 못지 않은 타격 기술을 가진 범가너를 향해 마지막까지 전력투구했다. 라이벌 팀을 각각 상징하는 투수들이 뿜어내는 마지막 에너지는 대단했다. 커쇼의 마지막 투구에 범가너는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잘 맞은 타구는 3루수 정면으로 향하며 아웃됐다. 커쇼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덕아웃으로 향하며 상대 감독 브루스 보치 감독(보치 감독 역시 올시즌을 끝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떠난다)을 향해 모자를 벗으며 경의를 표했고, 범가너를 향해서도 손동작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경기 후 커쇼는 "범가너가 팬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구단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를 기념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팬들은 두 남자가 보여준 마지막 승부(지금의 유니폼을 입고 벌이는)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라이벌 투수의 마지막 등장을 극적으로 살려준 커쇼에 대한 찬사도 상당했다.

# '뜨거운 가슴'과 '따뜻한 가슴'의 차이

2016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한국야구의 전설적인 야구해설위원 하일성은 자신의 저서 '야구 몰라요 일생 몰라요'를 통해 '뜨거운 가슴'과 '따뜻한 가슴'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뜨거운 가슴'에 대해 "뜨거운 가슴은 불같이 뜨겁다. 활활 타오른다. 격정적이고 폭발적이다. 주위에 불을 뿜어댄다. 냄비처럼 쉬이 달아오르다가도 금방 식어버린다. 리더가 뜨거운 가슴이면 피곤하다. 마음에 안 들면 한순간도 참지 못하고 감성이 달아오른다"라고 말한다. 반면 '따뜻한 가슴'에 대해 그는 "따뜻한 가슴은 뜨겁지 않다. 봄날 햇볕처럼 따뜻하다. 은은하고 포근하다. 서서히 데워지면서 주위를 감싸 안는다. 지시를 하되 일방적이지 않다. 쌍방 소통으로 충분히 이해시킨다. 꾸짖되 상대의 마음도 헤아린다"라고 말한다.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투쟁심'은 필수다. 그러나, '그냥 야구를 잘하는 선수'와 '훌륭한 선수'를 가르는 지점은 바로 '그가 뜨거운 가슴을 가졌는가, 따뜻한 가슴을 가졌는가'에 있다. 커쇼가 단순히 야구 잘하는 선수가 아닌 훌륭한 선수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바로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커쇼는 이제 야구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건 거의 다 이루었다. '거의 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 그의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쉽게 말해 미국프로야구 결승전 우승을 말한다)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설령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하고 은퇴하더라도, 사람들은 커쇼를 훌륭한 선수로 기억할 것이다. 그는 뜨거움을 넘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청년이니까. 그것도 매일매일 전쟁터와 같은 미국프로야구라는 무서운 곳에서 말이다.

소재웅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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