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합동 분립과 여전도회

통합·합동 분립과 여전도회

[ 선교여성과교회 ] 경남지역 여전도회 22

탁지일 교수
2024년 09월 12일(목) 07:00
통합과 합동 분립 직전 1959년 5월에 열린 경남노회여전도회연합회 제45회 총회.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회한 제44회 총회가 WCC 문제로 28일 정오경 혼란 속에 산회하자, 당일 오후 1시에 총회속개준비위원회가 대전 시내 미학식당에서 모였다. 증경총회장 전필순 목사의 사회와 이권찬 목사의 개회기도에 이어 임시서기 김광현 목사가 회원을 점명하니 참석자는 총 149명이었다. 또한 총회속개준비위원은 경기노회 회원 전원으로 하고, 다음날인 9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기로 결정한다.

연동교회에서 속개된 총회에는 목사 71명, 장로 74명, 선교사 10명 등 총 155명이 참석한다. 미국연합장로교회, 미국남장로회, 호주장로회도 총회 속개가 불가피했음을 인정하고, 향후 합동과의 연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서명한다.

하지만 연합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1960년 2월 17~20일까지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30개 노회(참관한 함북노회 및 불참한 충남노회, 황남노회, 목포노회 제외)에서 목사 106명, 장로 118명, 선교사 21명이 모여 개최된 제44회 총회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44회(통합) 총회'가 성립된다.

1960년 3월 15일 저녁 7시에 부산영락교회에서 경남노회 제70회 정기노회가 개최된다. 하지만 합동 소속 교회들은 같은 시간에 초량교회에서 정기노회를 진행한다. 이날 노회에서는 "총회적으로나 노회적으로 앞으로 완전 통합을 지향하고 노력하고 있음으로 불원한 장래에 완전 통합으로 볼 것이니 희망 중에 나가자"라는 개회사가 있었다.

또한 임원개선을 앞두고 7인(김치묵, 김두록, 장윤성, 석윤경, 송원선, 권태승, 원석하)의 교섭위원을 정하여 초량교회로 보내 "최대의 아량과 최성의 노력으로 완전 통합회의가 실현되도록 하자"는 논의가 가결된다.

초량교회에 모인 노회는, "첫째, 대한예수교장로회는 75년의 전통 위에 확립한다. 둘째, 보수적 신학교로 운영한다. 셋째, 양극단 인물은 견제한다. 넷째, 선교사의 주권행사를 억제한다"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3월 16일 오후 5시 30분 초량교회에서의 교섭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통합위원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초량교회에서 상대편 위원과 화합한 결과 피차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이미 그곳 임원은 개선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오직 앞으로 통합의 의사를 크게 반영하여 계속 통합 진행하기로 합의하였아옵니다. 우리 노회는 장시일 통합을 위해 노력해 왔아온데 앞으로는 가능한 한 통합에 유익이 되는 일을 위해 적극 힘쓰도록 하면 멀지 않은 장래에 완전 통합에 이를 수 있도록 믿는 바입니다."

통합과 합동으로의 경남노회 분열은 결국 여전도회의 분열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반세기를 함께 사역해 온 여전도회의 분열은 부산의 교회여성들에게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분열의 시기에 회장으로 선출된 방덕수는 아래의 부산노회여전도회연합회가를 작사하여, 선교여성의 본래적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1.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하신 주님

그 은혜 오늘 믿고서 새사람 된 우리

(후렴) 부산여전도회연합회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세반석 위에 세워 영원무궁 빛나소서

2.곡식 익어 추수할 때 불러주신 주님

그 음성 오늘 듣고서 몸을 바친 우리

3.잃어버린 한 마리 양 찾아가신 주님

그 본을 오늘 받고서 따라가는 우리


또한 통합과 합동의 분열로 인한 소속 교회들의 어려움을 돌보기 위해, 1960년 10월 3일 제46회 총회에서는 한창권 전도사로 하여금 개교회를 순회하도록 한다.

탁지일 교수 / 부산노회여전도회연합회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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