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열매가 아닌 좋은 열매를

많은 열매가 아닌 좋은 열매를

[ 목양칼럼 ]

강동원 목사
2019년 07월 19일(금) 00:00
딸이 4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학교 선생님께서 배를 타고 여행을 갈 때 가장 가고 싶은 10명의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다. 딸은 가족 5명과 평소 친하게 지냈던 고모네 가족 5명을 써서 10명의 이름을 썼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사고로 배가 전복됐을 때 오직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다는 전제를 던져주며 어떤 순서로 사람들을 포기하겠냐고 물었다. 딸은 고모네 5명을 먼저 포기했다. 그리고 가족 중에서는 가장 먼저 자기를 포기했다. 가족을 포기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를 포기했다. 엄마는 수영을 잘하니 자기가 포기하더라도 충분히 살 수 있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내 동생 둘을 포기했다. 그리고 아빠를 유일하게 살릴 사람으로 남겨 놓았다. 선생님이 왜 아빠를 유일하게 살릴 사람으로 남겨 놓았느냐고 묻자 딸이 대답했다. "아빠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에요. 말씀은 생명을 살리니까 아빠는 남아야 해요."

한때 딸에게 아빠란 생명을 살리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에 빼앗긴 사람이었다. 사역을 한다는 이유로 새벽이고 밤이고 얼굴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래도 사역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일만 했던 시간이었다.

찰스 험멜은 그의 책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급한 일이 끼어 들어 중요한 일을 밀어내는 것이다"라는 글귀를 소개한다. 또한 저자는 현대인들이 항상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일들은 당장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에 미루기 쉽지만 급한 일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기에 우리의 시간을 삼켜버린다. 그로 인해 급한 일에 쫓기느라 중요한 것을 점점 잃어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한때 급한 일에 쫓기느라 중요한 일을 미뤘던 삶을 살았다. 그 결과 가장의 빈 공간이라는 힘겨움을 가족이 도맡아야 했다. 결국 가족공동체라는 건물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 때문에 기도를 뒤로 미루는 모습, 갑자기 끼어 든 예기치 않은 일에 가정의 일을 뒤로 미루었던 모습, 당장 준비해야 하는 설교 준비에 내 영혼을 위한 말씀 묵상을 뒤로 미루는 모습은 내 삶의 중요한 기반을 통째로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강력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급한 일을 해결해 나갈 때마다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인정해주는 주변의 반응은 내가 살아있는 이유로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잃어가는 현실에 섰을 때 그동안 이루었던 성취감과 주변의 인정해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폴 트루니에는 말한다. "삶의 열매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일에 질적으로 얼마나 헌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많은 열매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을 잃어서는 안된다. 시급해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을 성실하게 담당해 가는 것이 질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강동원목사/회복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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