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온 것들을 만나며 |2006. 02.08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유혜자 지난 가을 청계천 변(邊)에 들어섰을 때 생각보다 작은 규모라 울 안에 들어선 안온함이 느껴졌다. 급속한 변화에 발맞추노라 고단하던 어른들은 자신의 혈관이라도 맑아진 듯 환한 얼굴이고, 아이들은 한여름의 물풀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새로 꾸며진 청계천의 구석구석이 밝고 소박하게 표현되어 친밀감 있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구성하려고 한 점이 느껴졌다. 삶의 무거운 …

황금빛 느티나무 |2006. 01.17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바람소리를 듣는다. 가슴속에 크고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아릿하다. 새해가 다가올 때마다 쓸쓸한 기분으로 창 밖의 느티나무 고목을 바라보게 된다. 이파리를 떨궈낸 지 오래인 지금, 햇살로 추위를 이기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골에서처럼 동네 입구나 마을 가운데서 위용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세상 변화에 아랑곳없이 정…

<유혜자의음악에세이>얼음과 불꽃의 '광시곡' |2005. 12.14
[ 음악에세이 ]   

유혜자     섣달이면 중요한 일을 맡고 있지 않으면서도 목표를 못 이룬 것 같고 속절없는 세월의 아쉬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럴 때면 주저 없이 라흐마니노프(Rakhmanonov, Sergey 1873-1943)의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듣는다. 몇 년 전 처음 이 곡을 택했을 때는 비감과 우수의 작곡가라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며 정면돌파 해나가기로 한 …

깊은 바닥을 채우는 |2005. 11.29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지난 4월, 모교인 강경 중앙초등학교 개교 백주년행사에 다녀왔다. 행사 후 50여 년만에 만난 동기 몇몇과 고향 거리를 돌아보았다. 4학년부터 남녀 별개 반이어서 얼굴, 이 기억 안 나는 이가 더 많았으나 의외로 서먹하지 않았다. 오히려 늙수그레해진 얼굴이 눈물겹기만 했다. 그리도 멀던 학교가 5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고, 했던 읍내에 많은 집들이 비거나 헐려서 허탈했다. "저기겡○네 집이었잖…

<유혜자의 음악에세이>유쾌한 오후 |2005. 11.08
[ 음악에세이 ]   

유혜자 "따아안 따따 딴 따따따-" 정오마다 황금빛 햇발처럼 퍼져오는 소리. 금관나팔의 힘찬 소리는 닫힌 유리창 밖의 공기를 가르며 교실 안에 있는 우리 귀와 가슴 구석구석에까지 빛나는 햇살을 들이댔다. 고교시절 'ㄷ'시의 문화원에서는 스피커로 시민들을 위한 방송을 했는데 시그널 음악이 트럼펫과 호른의 연주로 시작되는 경쾌한 행진곡풍의 음악이었다. 우리학교는 문화원에서 멀지 않았기에 소리가 …

기나긴 여정에서 |2005. 10.19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음악에세이

유혜자 지난 9월 14일 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로비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리사이틀'을 막 끝낸 백건우씨의 팬 사인회가 있었다. CD에 사인을 받으며 나는 "라흐마니노프나 포레보다 베토벤의 음악을 나중에 연주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뜨거운 맥박으로 삶의 전부를 내바치듯 한음 한음에 쏟았던 열정이 식지 않은 듯 상기된 얼굴의 백건우씨가 들려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

민족의 개가(凱歌) |2005. 09.13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유혜자 라디오PD시절 한가위 즈음엔 드보르작의 '신세계에서'와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등을 선곡해서 들려주었다. 향수 어린 음악들이 그리운 얼굴들과 억새꽃 한들거리는 고향산천으로 달려가게 했지만, 소식 없는 이를 떠올리며 울음을 삼키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고향이 북쪽이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향에 갈 수 없는 이들의 눈물을 거두어줄 음악이 아쉽던 날도 있었다.     나…

<유혜자의 음악에세이>자연애(自然愛)의 축제 |2005. 08.30
[ 음악에세이 ]   

    지난 8월, 용평에서 열린 제2회 대관령국제음악축제에 다녀 왔다. 정제된 언어로 소통을 이루는 것이 문학이라면 정치한 표현의 연주가 청중의 심리적, 심리적 반응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대 위 세계 정상의 연주자들은 눈부신 햇살을 받아 이글거리는 해바라기 같았다. 그들은 오연하되 거만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관중의 마음을 조준해서 연신 화살을 쏘아댔다. …

파도를 넘어서 |2005. 08.16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유혜자 강가에 서면 '세월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강물의 흐름이 보인다. 그런데 그 강물이 흘러 넓은 바다에 이르면 큰 물결로 넘실거릴 뿐 흐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유년시절에는 깊은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닐 숨가쁜 심해어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파도가 주는 잔잔한 기쁨과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하늘 끝닿은 곳에는 어떤 낭떠러지가 있어서 용궁이나 …

골짜기의 메아리 |2005. 07.26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유혜자     여고시절 음악교과서에서 본 슈베르트의 사진은 소박한 음악 선생님 같은 인상이었는데 얼마 전 채색화를 보며 수정을 했다. 숲 속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맑은 물가 벤치에 오선지를 쥐고 앉아 명상하는 그의 모습은 시인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물가에 풋풋한 풀을 키우는 물소리가 졸졸졸 울려 나올 듯한 그림. 그 물은 시원한 골짜기를 감돌고 들판을 지나 만인들의 마…

면도기와 하이든 |2005. 07.12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유혜자 프랑스의 까세라는 만화가가 수상의 얼굴에 부채꼴의 수염을 그려 넣었다. 수염을 기르지 않던 수상이 그 이유를 묻자 만화가는 "부채가 없는 것보다는 시원해 보이지 않습니까" 대답했다. 여름철에 생긴 해학인 듯하다.     음악가 중에도 브람스는 길게 기른 턱수염으로 넥타이 없는 앞가슴을 가리고 다녔다. 그런가 하면 '교향곡의 아버지'인 하이든은 턱이 말끔한 사진만 전해…

지젤의 사랑 |2005. 06.14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산골처녀 지젤은 멋진 알브레히드의 구애에 사랑의 파릇한 속눈이 트인다. 두 사람이 술래잡기하듯 정다운 몸짓의 춤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감미로웠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나탈리아 마카로바와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니시코프 주연의 영화 '지젤'을 오래 전에 보았다. 등장인물의 매혹적인 춤과 실감나는 연기가 생각나서 이따금 발레음악이 수록된 CD를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로맨틱한 춤과 아름답고 신비한…

불멸의 로망스 |2005. 05.17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85

어느 시인이 슬픈 아름다움이라고 한 말이 있다. 가벼운 감상(感傷)에 빠지지 않도록 뭉클하게 가슴을 울리는 선율, 이 슬픈 아름다움에 젖으면서 문득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생각이 미칠 때가 있다. 낭만적인 시정도 머금은 비에냐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2번 D단조를 듣고 있으면 그렇다. 음악은 문학작품처럼 인간애의 정신과 인간성 탐구의 주제로 미적 구조를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2005. 04.26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84) 비가모의 산정(山頂)도시 아크로폴리스에 올랐을 때 터키의 찬란한 역사의 흔적은 머리 없는 황제의 석상과 부서진 신전뿐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 경배를 강요했다는 황제의 얼굴 없는 석상의 어깨 위에는 무엄하게도 시든 올리브 이파리만 얹혀 있었다. 인간의 욕망처럼 쌓아올린 주피터의 제단도 돌기둥만 몇 개 서있는 사이로 바람만 감도는데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실려왔다. 둘러보니…

(83)연두 빛 시곡 |2005. 04.05
[ 음악에세이 ]   

유혜자 파리에 있는 몽쇼 공원에는 모네(Monet, Claude 1840-1926)의 화집에서 본 대로 연두 빛 나무잎새들이 팔락거리고 있었다. 키 큰 나무들의 층층이 우거진 이파리들이 땅에 점점으로 드리운 그림자. 모네의 그림에서처럼 그늘에 걸터앉은 귀부인들은 없었지만 둘레의 아늑한 정취가 인상적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새까만 고목둥치에 피어난 연초록 새 이파리가 눈물겨워 보였다. 매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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