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느티나무

황금빛 느티나무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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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17일(화) 00:00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바람소리를 듣는다. 가슴속에 크고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아릿하다. 새해가 다가올 때마다 쓸쓸한 기분으로 창 밖의 느티나무 고목을 바라보게 된다. 이파리를 떨궈낸 지 오래인 지금, 햇살로 추위를 이기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골에서처럼 동네 입구나 마을 가운데서 위용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세상 변화에 아랑곳없이 정원 한 쪽에서 호들갑을 떠는 다른 나무들을 거느리고 겨울 속으로 침잠하고 있다.

싱그러움과 그늘을 주고, 가을에는 달궈진 등불처럼 타올랐던 나무를 보며 많은 명곡을 작곡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했던 하이든을 떠올린다. 그는 거리의 악사와 아이들 지도로 다락방에 세들어 가난하게 살 때에도 작곡공부할 시간이 있음을 감사하며 기뻐했다. 후일 헝가리 에스테르하지가(家)의 악단에서 일할 때에 사랑의 에너지로 풍성한 걸작들을 작곡했고, 제자들을 자상하게 가르쳐서 존경받아 '파파 하이든'으로 불리었다.

에스테르하지가(家)의 악단 해산으로 헝가리에서 귀국했을 때 하이든(Haydn, Franz Joseph 1732-1809)은 58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한 흥행사 잘로몬이 영국으로 초청해서 그는 1791년과 1794년에 각 18개월씩 런던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93번- 104번)12곡을 작곡하고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고국의 국가를 작곡하게 되는 동기도 얻었다.

하이든은 영국에 있을 동안 '악성 헨델도 귀화해서 이곳에서 호화 저택, 명예박사도 받았고 팬도 많으니 귀화하라'는 권유에 '모두 다 있는데 단 하나 없는 것은 내 조국 오스트리아'라며 거절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 군(軍)의 위협을 받고 있던 때라 그들이 영국 국가 'God Save the King'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조국에도 국민들의 사기를 높일 노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국에 와서 그는 떠오르는 영감에 혼신의 정성으로 후일에 국가가 된 '황제 찬가'를 작곡했다. 가사는 시인 레오폴드 하슈카가 붙였다. 그는 작곡이 끝나면 악보 끝에 '하느님께 영광을'이라고 써 넣었다는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1797년 황제 프란츠 2세의 생일에 불렸던 이 노래가 순식간에 국민들이 애창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가가 되었고, 그 선율로 독일에서도 국가를 만들었고 찬송가(245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외)로도 쓰이고 있다.

이 '황제찬가'의 선율이 들어 있는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 제77번 C장조, 작품76의 3(이 현악4중주곡은 6곡으로 이뤄짐)은 그가 '천지창조' '사계'와 런던 교향곡을 작곡하던 시기에 이룬 걸작으로 부제인 '황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음악사상 주제가 제시되고 그 주제가 발전되고, 다시 주제가 재현되는 흐름의 '소나타 형식'과 교향곡의 형식을 완성해서 음악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깊은 예술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게 했다.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발전을 위한 노력은 그의 말년까지 계속되었다.

충만한 이파리로 지난 계절을 누렸기에 느티나무는 떨궈버린 이파리들을 꿈의 허상이라고 여기지 않듯이 우리도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고 괴로워하지 않아야 하리라. 느티나무는 벌레들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방어능력이 있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연륜과 함께 위풍이 당당하고 늙어서도 정채(精彩)가 찬연해진다. 그 둥치에는 오래 동안 얻어진 명상과 노래가 담겨 있으리라. 뿌리 내린 땅속의 신비를 알아내고, 잎새에 구르던 햇빛과 달, 풀벌레 노래도.

나는 이웃과 나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무릎 꿇고 기도했는가. '황제'를 들으며 겸허한 마음으로 뉘우친다. 열성적으로 사느라고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는가. 이런 저런 부끄럽고 안타까운 흔적이 자신을 괴롭히는 세모.

겉으로는 평화에의 의지라도 품은 듯 고즈넉한 느티나무. 그러나 숨죽이고 가슴 졸이며 힘찬 출발을 꿈꾸는 이파리들이 고목 뿌리에서 수액을 길어 올리며 숨쉬고 있을 이 계절. 꿈의 창조, 희망을 약속하는 느티나무 고목은 눈부신 햇살을 받아 황금빛깔로 반짝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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