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자의 음악에세이>자연애(自然愛)의 축제

<유혜자의 음악에세이>자연애(自然愛)의 축제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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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30일(화) 00:00
   
지난 8월, 용평에서 열린 제2회 대관령국제음악축제에 다녀 왔다.

정제된 언어로 소통을 이루는 것이 문학이라면 정치한 표현의 연주가 청중의 심리적, 심리적 반응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대 위 세계 정상의 연주자들은 눈부신 햇살을 받아 이글거리는 해바라기 같았다. 그들은 오연하되 거만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관중의 마음을 조준해서 연신 화살을 쏘아댔다. 그들이 일궈내는 물결은 전율을 온몸으로 퍼지게 하더니 어느 순간 섬광과 같은 영성(靈性)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둘째 날 저녁, 용평리조트 '눈마을 홀'에서 있은 '저명 연주가 연주회'를 감상했다. 연주시간까지 낮게 드리워진 구름 때문에, 멀티미디어 화면으로 야외에서 감상할 사람들을 염려하며 우리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레퍼토리인 '세종 솔로이츠'연주의 'G선상의 아리아'에 도취해서 "이 음악의 매력을 미처 몰랐었구나"하고 비 걱정을 잊은 것은 단지 몇 분, 이 음악이 끝나갈 즈음 고운 선율사이에 꽂히는 폭우소리에 마음이 졸여졌다. 30년 전,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의 정명훈씨 피아노연주회 때 연주가 5분쯤 지났을 때 어디선가 망치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한 그가 연주를 멈췄다. 잠시 후 처음부터 신중하게 다시 시작하는 것을 보았었다. 이번에도 신경이 예민한 연주가들이 혹시라도 공연을 늦추거나 곡목을 바꾸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염려와 달리 두 번째 곡인 모차르트의 '현악5중주 C장조, K.515'도 무사히 끝나고,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제1번(G단조, op.25)'에선 연주자는 물론 관객까지 혼연일체가 되었다. 무대의 연주자들도 무아경에 이른 듯했고 눈이 부시어 나는 눈을 감고 들어봐도 환상의 소리였다. 그런 화합을 시샘하듯 천둥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이번 음악축제의 주제가 '전쟁과 평화'라더니 음악 사이에 전쟁폭음을 효과음으로 넣으려는 것일까. 그런데도 열정적인 연주가들은 자신의 연주에 도취되어 미처 못 느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연주로 천둥소리쯤은 압도해버리려는지 의연하게 계속했다. 특히 마지막 악장인 론도는 더욱 신나게 빠른 템포로 연주하는 바람에 천둥소리에 대한 공포는 멀리멀리 달아났다.

연주자들 중 하얀 머리와 수염의 조엘 스미어노프는 연주장 입구에 세워놓은 사진이 낯에 익다했더니 줄리어드 4중주단 멤버란다. 줄리아드 4중주단과 요요마가 협연한 CD의 사진에서 눈에 익은 스미어노프인데 여기서는 비올라를 연주했고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죤 권, 첼로의 슈미트, 피아노의 김영호가 이뤄낸 눈부신 하모니였다.

후에 들으니 한국인인 죤 권과 스미어노프는 부부로 이들은 작년부터 연주무대인 용평지대의 산림과 숲, 자연경관을 좋아해서 일행보다 미리 와서 즐긴다고 한다. 좋아하는 환경이기에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세계적인 음악축제들이 대개 유명음악가의 고향이나 활동무대였던 곳에서 열린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알프스 산맥의 루체른 페스티벌,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 외에도 아름다운 대자연 속이나 고적이 많은 유서 깊은 관광지에서 열리는 음악축제가 많다. 용평도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차령산맥의 깊고 그윽한 봉우리와 숲, 계곡을 개발한 리조트이다. 긴 슬로프가 있는 스키장과 레저 시설, 산언저리의 콘도 등 아름다운 풍광으로 한류 열풍의 선두격인 '겨울연가'의 주요 촬영장소이기도 했었다.

브람스 피아노 4중주 제1번은 1861년 여름, 브람스가 바덴바덴에 있는 언덕 위의 집에 가서 작곡을 했는데, 작곡실의 창을 열면 리히텐탈의 울창한 숲이 시원스럽게 보였다고 한다. 작곡배경이 숲이어서 숲 속의 연주가 성공적이었을까.

불타는 대지에서 성큼 자라며 삶의 의욕과 성장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새로운 자신을 구축하게 하는 해바라기. 명 연주가들은 그들의 성취로 우리를 도취시켰고 천둥소리도 그들이 사랑한 숲처럼 자연의 일부로 포용하는 자연애(自然愛)의 축제를 벌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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