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와 하이든

면도기와 하이든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5년 07월 12일(화) 00:00
유혜자

프랑스의 까세라는 만화가가 수상의 얼굴에 부채꼴의 수염을 그려 넣었다. 수염을 기르지 않던 수상이 그 이유를 묻자 만화가는 "부채가 없는 것보다는 시원해 보이지 않습니까" 대답했다. 여름철에 생긴 해학인 듯하다.

   
음악가 중에도 브람스는 길게 기른 턱수염으로 넥타이 없는 앞가슴을 가리고 다녔다. 그런가 하면 '교향곡의 아버지'인 하이든은 턱이 말끔한 사진만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수염이 자라기 전에 부지런히 면도를 했던 것 같다.

하이든은 30여 년 동안 에스테르하지 가(家)의 악단에서 지휘자로 있다가 니콜라우스 후작이 돌아가자 악단이 해체되어 빈으로 돌아왔다. 런던에서 연주회장을 경영하던 흥행사 잘로몬은 평소에 숭배하던 하이든을 찾아가 높은 작품료의 작곡과 자작곡의 지휘를 의뢰하며 영국으로 초청하려고 했다.

거의 1년에 걸친 잘로몬의 끈질긴 권유에도 하이든(Haydn, Franz Joseph 1732-1809)은 고향과 친구들을 떠나기 싫어서 런던 행을 거절했다. 그런 하이든의 마음을 잡아끈 것은 최신식 면도기였다. 어느 날 아침 하이든은 잘로몬이 신기한 면도기로 수염을 깎는 것을 보고 그 면도기를 너무나 갖고 싶어했다. 잘로몬은 하이든에게 "영국에 가면 이 물건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면서 설득했다고 한다.

영국에 건너간 이유야 어떻든 하이든은 1차 방문한 1791년과 1792년 사이에 제93-98번의 1차 '잘로몬 교향곡'들을 작곡, 지휘하여 호평을 받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음악박사 칭호를 받았다. 2차 방문은 1794년이었는데 제99번-104번 교향곡인 2차 '잘로몬 교향곡'들을 작곡했다. 영국에서의 작곡과 연주는 수입도 컸지만 뛰어난 교향곡들을 낳게 했던 것이다.

'놀람'이라는 별칭과 함께 재미있는 일화가 알려진 교향곡94번도 그때 작품중의 하나이다. 하이든은 악단원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인간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해서 도왔기에 '파파 하이든'으로 불리었다. 에스테르지 궁의 악단에 있을 때 후작이 오래 동안 휴가를 주지 않아 꾀를 내었다. 후일 '고별'이라는 별칭이 붙은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마지막 악장에서 악단원들이 악기별로 자기 연주부분이 끝나면 차례로 퇴장하고 마지막에는 끝 부분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와 지휘자만 남게 만든 곡이었다. 니콜라우스 후작으로 하여금 이 퇴장에 담긴 우의(寓意)를 알아채게 했다고 한다.

재치 있고 유머가 풍부했던 하이든은 '고별'에서의 성과로 자신을 얻어, 94번 교향곡에서는 연주회장에서 끄덕끄덕 조는 귀부인들을 놀래줄 구상을 했다. 그래서 조용한 2악장에서 경쾌하고 조용한 현악기의 연주가 29초쯤 흐르다가 난데없이 팀파니가 큰 소리로 터져 나오게 했다. 이 부분에서는 영락없이 졸던 귀부인들이 놀라 잠이 달아나서 시치미를 떼고 정좌했다는 것이다.

단원들을 아끼고 원만했던 하이든이지만 가발업자의 딸인 켈러와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음악에 소양이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부인은 남편이 작곡 메모를 해놓은 종이를 잘라서 파머할 때 머리칼을 마는데 쓸 정도로 무지했다고 한다.

집안에서보다도 에스테르하치 성벽 바깥에 맑은 호수와 정원이 있는 작은 작업실에서 작품을 썼다는 하이든. 새소리와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에 상쾌하게 잠을 깼을 때 더부룩한 수염으로는 아름다운 악상을 적어나갈 수가 없었던가. 머리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사진으로 보아 깔끔한 성격이었을 그가 면도할 때마다 더욱 편리한 것을 구하고 싶었으리라.

중요한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은 수염은 물론 손톱도 안 깎는 등 금기사항들이 있다고 한다. 깊은 신앙심으로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을 하이든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귀족들의 구미에 맞는 음악보다 영원히 남을 예술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하이든. 맑은 물방울을 튕기며 날아오른 파란 물새가 나는 곳으로 따라오르고 싶었을 그의 자유로움과 면도를 끝낸 상쾌함으로 붓을 들었을 하이든. 그의 음악을 들으면 산뜻하고 시원한 오 데 콜론 내음이 풍겨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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