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의 사랑

지젤의 사랑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5년 06월 14일(화) 00:00
산골처녀 지젤은 멋진 알브레히드의 구애에 사랑의 파릇한 속눈이 트인다. 두 사람이 술래잡기하듯 정다운 몸짓의 춤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감미로웠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나탈리아 마카로바와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니시코프 주연의 영화 '지젤'을 오래 전에 보았다. 등장인물의 매혹적인 춤과 실감나는 연기가 생각나서 이따금 발레음악이 수록된 CD를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로맨틱한 춤과 아름답고 신비한 배경들을 떠올려보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아당(Adolphe Charles Adam 1803-1856)은 39편이나 되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발레음악도 14곡이 있는데 오늘날엔 '지젤' 한 곡만으로도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 '지젤'은 이전의 발레음악들이 가벼운 춤곡을 모아놓은 단순한 음악이던 것과 달리 사랑을 엮어 가는 스토리와 무용을 위한 음악이다. 아당은 등장인물의 성격과 이야기에 꼭 들어맞는 '지젤'을 작곡하여 근대 발레음악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1831년에 있었던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의 '지젤' 초연 때 관중들은 신기한 모습에 들뜨게 되었다. 그때까지 보아온 것과는 다른 발레리나의 날렵한 의상과 신발, 동작에 놀란 것이다. 쫙 펴진 우산모양의 겹으로 된 스커트인 튜튜를 입은 발레리나, 그리고 굽이 없는 무용화를 신고 발끝으로만 종종종종 스텝을 밟다가 미끄러지듯 춤추는 모습에 관중들은 환호했다. 게다가 오페라보다 흥미로운 극적인 얘기와 아름다운 음악에 더욱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는 춤을 좋아하다 죽은 처녀귀신의 정령 '빌리'에 대한 전설이 있다. 빌리는 밤마다 무덤에서 빠져 나와 젊은 사람을 유혹해서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한다고 한다. 지젤의 대본은 작가 데오피유 고티에가 이 전설을 바탕으로 그가 연모한 발레리나 카를로타 그리지를 위해서 쓴 것이다.

아름다운 라인강변의 숲 속을 배경으로 청순하고 아름다운 처녀 지젤과 평민을 가장한 귀족 알브레히드는 사랑에 빠진다. 그 마을에는 지젤을 짝사랑하고 있는 시골청년 힐라리온이 있는데 그는 알브레히드가 약혼녀가 있는 귀족이라는 정체를 알려준다. 그 사실을 들은 지젤은 충격으로 자살을 한다. 그녀가 죽자 알브레히드와 힐라리온은 지젤의 죽음이 서로의 잘못이라고 우겨댄다.

환상적인 숲 속에 밤이 오면 빌리들이 무덤에서 나와 밤새 춤을 추다 새벽이 되면 자기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알브레히드와 힐라리온은 지젤을 죽음으로 몰았던 자신을 후회하며 지젤의 무덤을 찾아간다. 빌리들은 지젤의 무덤 앞에 있는 힐라리온을 계속 춤추게 하여 지쳐서 연못에 빠져죽게 한 뒤, 백합꽃을 들고 무덤을 찾은 알브레히드에게도 계속 춤추게 한다. 이때 지젤이 나타나 빌리의 여왕에게 알브레히드를 살려달라고 간청하나 여왕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알브레히드와 지젤이 밤새도록 격정적으로 춤을 추어 지쳐서 죽게 되었을 무렵,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와 알브레히드는 죽음 직전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아당은 이 대본을 보고 오묘한 이야기에 반해서 일주일만에 작곡을 끝냈다고 한다.

내가 본 마카로바와 바리시니코프 주연의 영화 '지젤'은 바람에 떨리는 꽃잎의 미세한 떨림이나 광풍에 휘몰리는 동작까지 뛰어난 연기력의 콤비를 이뤘다. 게다가 환상적인 배경으로 영상미도 뛰어났었다. 이 대본은 작가가 사랑하는 발레리나를 위해 썼으니 다양한 춤과 뛰어난 심리적인 묘사로 여주인공을 돋보이게 했으리라. 불 속으로 빠져드는 불나비같이 알브레히드에 반해서 어쩔 줄 모르는 지젤의 미묘한 동작과 그녀가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춤추는 처연한 장면은 가슴이 아릿했다.

지젤 음악의 CD가 무용장면도 없이 길게 계속되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지젤의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속였던 알브레히드, 자신과 맺어짐은 포기했지만 그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순수한 지젤의 사랑,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오늘날 사랑의 순례자들에게 사랑의 환생 가능함을 일깨워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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