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닥을 채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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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5년 11월 29일(화) 00:00
지난 4월, 모교인 강경 중앙초등학교 개교 백주년행사에 다녀왔다. 행사 후 50여 년만에 만난 동기 몇몇과 고향 거리를 돌아보았다. 4학년부터 남녀 별개 반이어서 얼굴, 이 기억 안 나는 이가 더 많았으나 의외로 서먹하지 않았다. 오히려 늙수그레해진 얼굴이 눈물겹기만 했다. 그리도 멀던 학교가 5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고, 했던 읍내에 많은 집들이 비거나 헐려서 허탈했다. "저기겡○네 집이었잖아"하고 가리키는 곳엔 친구네 기와집이 별채만 남은 채 폐기물이 쌓여 있었다. "너 어렸을 때 ○○좋아했지. 저 집 앞에 서 있던 거 봤다"는 친구의 말에 "나만 서 있던 게 아니라"고 변명하는 붉어진 친구 얼굴이 오히려 보기에 좋았다.

   
고개를 돌리니 허술한 극장건물이 있었다. 화려함으로 들뜨게 했던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짐작한 듯 "극장에서 울리던 음악들이 얼마나 좋았는데"하며 한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그랬다. 6.25전쟁 때 피난 갔다가 9.28수복 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읍내로 돌아왔을 때, 극장은 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아침, 저녁이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와 영국민요 '산골짝의 등불'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 1756-1791)의 '아이네 크라이네 나하트 무지크' 등을 들려주어 전쟁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을 달래주었다.

늘 구수한 내음을 풍기던 음식점 ○○옥 빈터에는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날씨가 따뜻하고 변화 없는 좋은 여건에서 핀 화려한 꽃들에겐 향기가 없지만, 전쟁의 아픔을 겪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우리에겐 인간적인 향기가 배어 있을까 하고 동창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모차르트와 함께 한 내 인생'은 프랑스 소설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Eric-Emmanuel Schmitt 1960-)가 모차르트에게 보낸 자전적 편지모음집이다. 17세에 극심한 성장통을 겪으면서 자살할 방법을 찾던 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연습을 구경하다가 아리아 '어디로 갔나, 그 아름답던 시절은'을 듣는 순간 문득 시간이 멈춰버리는것처럼 매혹되었다.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은 것을 비롯해서 그후 인생의 고비마다 음악에서 생기를 얻고 위로 받은 내용을 털어놓았다. 모차르트 음악의 위대함에 탄복하는 내용들이다.

어렸을 때 우리에게도 기쁨을 준 모차르트 13개의 세레나데 중 제13번인 G장조 '아이네 크라이네 나하트 무지크'는 생기롭고 경쾌한 음악으로 세레나데 중 가장 인기가 있다. 모차르트가 가난과 병마로 고통 속에 있었으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크게 성공을 거두고 다시 '돈 죠반니'를 쓰던 시기에 작곡했기 때문이었을까. 특히 2악장 안단테의 '로만쩨'는 감미로운 선율로 된 연가(戀歌)같다. 마음이 끌린 여자친구의 창 앞에서 소년 동창들은 극장에서 들려오던 이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슈미트의 이 음악에 대한 편지를 읽으면 숙연해진다. 여행과 작곡에 지쳐 소화불량, 신장염, 치통 등 병마에 시달린 모차르트가 어떻게 "그토록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부드럽고 편안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지?" 묻고는, 그 지독한 고통 때문에 그는 진정한 기쁨이 뭔가 알았을 것이라면서 "고통, 악, 우리네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짧디 짧은 인생, 염세주의자들은 이런 것들 때문에 무기력에 빠져서 아니라는 말만 연발하며 절망의 늪에 빠지지만, 낙천주의자들은 영차 하고 바닥을 디디며 수면으로 떠오르지. 구원을 향해. 그렇게 다시 떠오르는 건 자기가 '가볍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운 심연을 헤치고 나와 한낮의 햇볕을 받으며 숨을 쉬기 위해서야"라고 낙천적인 작품을 쓸 수 있었던 모차르트의 숭고함을 찬탄했다.

우리는 이런 숭고함은 몰랐어도 꺼져 있던 등잔 바닥에 기름이 채워져 불이 켜지듯,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밝고 따뜻함을 채워주는 음악으로 여겼었다.

귀경 길의 버스에 올라 창문을 열었으나, 어렸을 때처럼 바람결에 실려오는 음악대신 쌀쌀한 꽃샘바람이 고향을 등지는 우리를 배웅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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