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 반달 |2005. 11.16
[ 산방일기 ]   산방일기

장돈식 환한 빛에 잠을 깼다굨 새벽하늘에 앞산을 넘어 돋은 달빛이다. 내가 좀 둔감한 탓인지 선 자리 가까이 벼락이 떨어진다 해도 그다지 호들갑스럽게 놀라지는 않을 터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방안에 든 달빛에는 놀란다. 주섬주섬 옷을 끼어 입고 뜰에 내려서며 달빛아래를 걷는다.     반가웠다. 찾는 이 없는 이 산방이건만 저 달은 유신(有信)하여 이 새벽에 내 …

<장돈식의 산방일기>산방의 커피타임 |2005. 10.25
[ 산방일기 ]   

    나는 커피를 즐기는 편이다. 집에는 우리 전통차(茶)가 있어 때로 마셔보기도 하지만 이미 '갈색황금'의 노예가 된지 오래다. 집에 있을 때면 마시는 장소는 정해져 있다. 산방을 스쳐 흐르는 개울가에 지은 정자, 초우정(草友亭)이다.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은 여기서, 추운 겨울 한 철은 서재에서 마신다. 시간도 정해져 있어, 매일 아침 9시경이다. 이 시간대에 …

내 사랑 치악산 |2005. 09.20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장돈식 날씨가 카랑하다. 산방 문을 나서서 고개를 드니 치악산 남대봉이다. 치악산 제2봉인 남대봉 정상에 걸쳐 쉬어가는 흰 구름, 햇빛을 반사하며 푸른 하늘에 획을 긋고 거기에 있다. "산과 강은 좋은 이웃"이라고 J.하버드는 어디엔가 썼다. 며칠째, 아내 이외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나 산이 있어 외롭지가 않다.     함허의 '함허화어록(含墟和語錄)'에 "산은 솟고 골은 …

숲의 생리 |2005. 09.06
[ 산방일기 ]   

글 장돈식 그림 김지혜     산방(山房)을 지을 때였다. 정(定)한 터는 나무와 푸새가 우거진 숲속이었다. 덤불을 헤치고 곡괭이를 내리쳐 파내는데, 숨이 확 막히도록 풍기는 냄새는 향긋한 푸새냄새나 한약방의 건재(乾材)에서 풍기는 냄새는 아니었다. 지독한 곰팡내와 죽은 식물이 썩는 퀴퀴한 냄새였다. 파 헤쳐진 흙밥에는 수많은 뿌리가 뭉쳐지고 뒤엉켜 흙의 수분과 양분(養分)…

산방의 새 이야기 |2005. 08.23
[ 산방일기 ]   

장돈식 때는 1990년대, 나의 산방의 둘레는 새의 천국이었다. 치악산을 우러르는 앞 뒷산은 우람하고,숲이 깊다보니 여기가 계절 따라 오고가는 새들의 집합장소였던 것 같다. 여름철새는 산 넘고 바다를 건너온 나래를 여기서 접었다. 그리고 무리를 헤쳐 저 갈 곳으로 갔다. 한 철을 한국에서 보내고 번식지로, 월동지로, 떠나야하는 겨울새들도 여기에서 모여 대오(隊伍)를 지었다. 알아듣지는 못하지…

담돌이네 가족사 |2005. 08.09
[ 산방일기 ]   산방일기

장돈식     담돌이는 다람쥐 이름이다. 오래 전 이 백운산 중턱, 우리 내외가 화전민이 살던 빈 집으로 찾아들 무렵에는 다람쥐가 추정으로 2백마리는 있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아, 약간 거리를 둔 채, 신참(新參)인 나를 따라다닐 정도로 호기심이 있었다. 이 터에는 30년도 더 된 대추나무, 밤나무가 수 십 그루가 있었고, 나는 처음부터 그 열매는 여기…

'청산엔 하얀 꽃' |2005. 07.19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장돈식     이른 아침 기상하며 문을 열어 제친다. 뜰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침공기가 밀치고 들어온다. 거기엔 우아하고 그윽한 꽃 향이 섞여있다. 앞산에 가득 핀 산목련이 내뿜는 향이다. 이 꽃은 한 그루만 피어도 골 안에 그 향이 진동한다. 요즈음 수많은 나무가 한꺼번에 피었으니 짐작할 만하다. 이 나무는 잎이 완전히 돋은 후에 꽃을 피우는 게 시중 가정화단의 목련과 다르…

[산방일기]화재시말서 |2005. 07.07
[ 산방일기 ]   

장돈식     나의 서재인 산방에 불이 났다. 저녁 8시 경 이웃 집에 갔다가 9시 TV 뉴스를 보려고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는데 집안에 연기가 자욱하다.'불이다!' 직감하고 소화기(消火器)를 켜들고 안으로 두 세 걸음 들어가다가 후퇴한다. 연기가 어찌나 독한지 두 세 호흡했을 뿐인데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부엌 천정 언저리에 불꽃이 보인다. 119에 신고를 하고, 마당에 …

아침의 찬가 |2005. 06.28
[ 산방일기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유혜자 전설이나 동화에서 마법의 힘은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에 무력해진다. 마법의 베일을 스르르 벗겨내는 황금빛 햇살.     세계를 지배해보려는 허황된 꿈을 가진 사나이 '페르 귄트'는 사랑하는 솔베이그를 두고 다른 여인에 눈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결혼식장에서 남의 신부를 납치하여 산 속으로 도망가서도 다시 마왕의 딸을 만나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거절하는 바람에 화가 …

6.25에 생각나는 사람들 |2005. 06.21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85)

장돈식 6월 25일이 다가오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앞산에 오르면 서해가 바라보이는 황해도 장연군 후남면은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이고 할머니 때부터 섬기는 장주애교회가 있다. 공교롭게도 원한의 38선이 우리 마을 4킬로미터 앞을 지나 있었다. 날짜는 잊었지만 1946년 가을 어느 날, 장연읍 내 서부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박경구 목사님이 한 젊은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오셨다. 평소에 존경…

[산방일기]산촌 사람들 |2005. 06.07
[ 산방일기 ]   

이곳에 처음 오던 날이었다. 버스가 서고 사람들이 내렸다. 장을 보고 오는 길이라 손에 든 짐들이 잡다했다. 그때 이미 떠난 버스를 좇아가며 두드려 세우는 아낙네가 있었다.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차삯을 내지 못하고 내려 다시 갔다온 것이었다.     이 고장을 지나는 국도를 보수하는 부역에 나도 참여한 일이 있다. 내가 이 일은 국도이니 길을 맡은…

[산방일기] 실락원 |2005. 05.24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83

방그러니 계곡은 나의 파라다이스. 이 무릉도원은 지금 한창 물이 올랐다. 스위스의 의사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그의 저서 '인생의 사계절'에서 소년기를 오뉴월에 빗댔다. 그 말을 원용한다면,우리집 뜨락의 자연은 지금 사춘기를 맞은 셈이다.     성경에서는 에덴 동산을 퍽으나 좋았던 곳으로 쓰고 있는데,그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이 손수 지으셨다지 않은가. 나…

꽃샘 |2005. 05.10
[ 산방일기 ]   산방일기/ 82회

장돈식 지는 꽃으로 웃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땅은 함박웃음을 웃고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제주,서귀포에 머물고 있을 3월 상순에 그 곳에서는 벌써 목련이 만개했었다. 지금은 나의 서재가 있는 강원도 영서지방에도 목련은 피고,생강나무꽃,개나리,복수초,애기똥풀 등,목본(木本) 초본(草本)들의 꽃이 빈산을 노랗게 수놓고 있다. 그런데 유심히 고찰하면 '꽃'이란 단어가 식물의 생식기관으로…

주상절리 |2005. 04.12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81

장돈식 지난겨울 제주에 머물면서 중문에 있는 주상절리를 보았다. 바다에서 수 십 미터나 솟은 6각형 돌기둥이다. 오래 전(3천5백만년),천지개벽 때 현무암(玄武巖)이 6각형 결정체(結晶體)를 이룬 것이라고 한다. 제주의 이것을 보며 해방 전 동해, 해금강에서 본 총석정(叢石亭)을 연상했다. 나는 경원선을 따라서 육로로 갔었기에 외금강(外金剛), 내금강(內金剛)을 두루 거쳐 해금강(海金剛)에 …

겨울참외 |2005. 03.31
[ 산방일기 ]   

79회/ 장돈식 장로 엊저녁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기상 관계자들은 영동지방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100년만이라고 한다. 이곳 영서지방에도 많이 내렸다. 눈에 갇힌 서재(書齋)에 들어앉아 횡재라도 한 듯 설경(雪景)을 즐긴다. 하계(下界)에서는 차들이 눈에 막혀 뭉기적거리며 뒤엉긴 거리와 도로를 보노라니 같은 눈이 장소와 사람에 따라서는 낭만일 수도, 재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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