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찬가

아침의 찬가

[ 산방일기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5년 06월 28일(화) 00:00
유혜자

전설이나 동화에서 마법의 힘은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에 무력해진다. 마법의 베일을 스르르 벗겨내는 황금빛 햇살.

   
세계를 지배해보려는 허황된 꿈을 가진 사나이 '페르 귄트'는 사랑하는 솔베이그를 두고 다른 여인에 눈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결혼식장에서 남의 신부를 납치하여 산 속으로 도망가서도 다시 마왕의 딸을 만나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거절하는 바람에 화가 난 마왕이 페르를 죽이려는 순간, 아침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에 마왕의 궁전이 무너지면서 페르 혼자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그는 고향에서 솔베이그와 잠시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자 솔베이그를 남겨둔 채 해외로 모험을 떠난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항해 중 어느 날 아침 아름다운 모로코 해안에 이른다. 그 때 고요하고 평안한 '아침기분'이 울린다.

'아침기분'은 그리그의 시극(詩劇) '페르 귄트'에 나오는 곡으로 모로코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했다. 클라리넷과 바순의 하모니에 실려 플루트가 해맑은 아침의 주제를 노래한다. 밤새 어둠 뒤에서 그윽하게 준비된 화려한 풍광을 펼쳐주어 사랑이 가득한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해줄 것만 같다.

희곡 '페르 귄트'는 노르웨이의 세계적 문호 입센(1828-1906)이 노르웨이의 전설을 토대로 쓴 작품이다. 입센은 연극운동을 하다가 큰 빚을 지고 외국에 피신해 있으면서 그리그(Grieg, Edvard 1837-1907)에게 편지로 극음악의 작곡을 부탁했다.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자랑인 입센의 부탁에 기쁘게 곡을 썼다. '페르 귄트'는 그리그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음악이기도 하다.

'페르 귄트'의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두자 그리그는 이 극음악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8곡을 골라 네 곡씩 나눠서 제1, 제2 모음곡으로 엮었다. 이 모음곡 중 '아침기분'은 제1모음곡에, 유명한 '솔베이그의 노래'는 제2모음곡에 있다. '솔베이그의 노래'는 알려지다 시피 슬프고 애련한 노래로 유명하지만 '아침기분'은 희망과 기쁨, 눈부신 생명의 뜨락을 연상케 한다.

전부 5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페르 귄트' 중에서 '아침기분'은 제4막의 첫머리에 나온다. 4막은 꿈꾸는 듯하고 희망적이며 서정적인 '아침기분' 느낌과는 다르게 페르의 굴곡 심한 역정이 펼쳐진다. 사기꾼에게 속아 빈 털털이가 된 페르가 예언자 행세로 거부가 되었으나 추장의 딸 아니트라의 매력에 빠져 또 다시 전 재산을 잃고 만다. 다시 몇 번의 굴곡을 겪은 후 거부가 된 페르귄트는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나 전 재산을 잃는다. 겨우 목숨만 남은 채 돌아온 그는 이내 늙은 솔베이그의 품에 안겨 숨지고 만다.

해맑은 아침은 이 극의 내용과는 다르게 생명들에게 삶의 기쁨을 열어준다.

높은 열로 밤새 신음하다, 창 너머 황금빛 햇살이 대지를 쏘아대고 새들이 창공으로 날아오를 때 고통이 물러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불안과 공포가 물러가고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던 아침.

성경에서는 의로운 지도자를 가리켜 아침햇살 같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한 이들은 이른 아침에 일을 시작하여 구하는 것을 얻었고 이른 아침에 간구하는 기도가 이뤄졌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침 일찍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올랐다가 이미 희생양을 준비해둔 여호와를 만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모세는 매일 아침이면 광야에 준비된 만나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양식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날이 밝기 전 외진 곳에 가서 기도 하셨다.

아침은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고 만물을 소생시킨다. 그리고 빛을 비춰서 시들었던 것들을 싱싱하게 깨어나게 하고 또 자라게 한다. 고통과 질병도 물러가게 한다.

H.D. 소로우가 "탄력이 있고 활력이 넘치는 사상이 태양과 보조를 맞추는 사람에게는 날은 영원한 아침이다"고 '숲 속의 생활'에서 한 말을 떠올리며 '아침기분'을 듣는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기 위해 매일 아침 깨어나는 우리는 구원의 빛처럼 숭고한 아침 햇빛 앞에 참으로 겸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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