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꽃샘

[ 산방일기 ] 산방일기/ 82회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5년 05월 10일(화) 00:00
장돈식

지는 꽃으로 웃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땅은 함박웃음을 웃고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제주,서귀포에 머물고 있을 3월 상순에 그 곳에서는 벌써 목련이 만개했었다. 지금은 나의 서재가 있는 강원도 영서지방에도 목련은 피고,생강나무꽃,개나리,복수초,애기똥풀 등,목본(木本) 초본(草本)들의 꽃이 빈산을 노랗게 수놓고 있다.

그런데 유심히 고찰하면 '꽃'이란 단어가 식물의 생식기관으로, 생김새로,향으로 어울리지 않고,심상치 않다. 한자(漢字)로 보면 매우 부드럽게 '화(花)'요,일본말로는 '하나',영어로도 유럽의 여러 나라의 경우,대개 로마여신의 이름인 '플로라'를 어원으로 하는 '플라워'에 모두 비슷하고 가까워 유려하다.

그러나 우리말의 '꽃'만은 앞뒤로 'ㄲ'과 'ㅊ'의 억센 자음(子音)이 있어 꽃이라기보다는 칼과 송곳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풍긴다.

어째서 아름다움과 축복과 반가움이어야 할 실체가 뾰족하고 억센 소리를 내게 되었는가. 그 말의 형성과정에서 '꽃'과 '시새움'이라는 말이 합성되면서 다른 나라말에는 없는 '꽃샘'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한국인들은 어제부터인가 봄추위를 '꽃샘'이라고 불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온갖 식물은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주야의 평균 온도가 섭씨 10도를 웃돌면 생장과 개화를 준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물러갔던 겨울이 무슨 미련이 있는지 4월 중순경에는 다시 한 번 되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예 피던 가지에 피음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亂)분분(紛紛)하니 필동말동하여라

나는 이 시를 읊노라면 울고 싶어진다. 이 이조의 여류시인은 가슴에 고이 봉오리 지던 꿈이,무슨 사연이 있었던지 시새움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는 절망적인 마음을 이리도 리얼하게 읊었던가. 한자성어에는 호사다마(好事多魔)도,춘한(春寒)등 너무도 많다.

진짜 시샘은 인간 사회를 어둡게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다된 밥에 재 뿌린다' 등. 삼성이 몇 조원을 벌었대서 배가 아픈 게 아니다. 또래의 사업가가 수출산업 금상을 탓기 때문이다. 거지가 마음이 불편한 건 저 녀석이 나보다 맛있는 걸 많이 얻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해외에 진출해서 성공을 하면 너도나도 덤벼들어 덤핑으로 서로 다 망하는 예는 많다. 건설공사 부분이 그렇고,이제 싹트는 자동차 수출시장,전자 제품시장이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지 않을 사람 없다.

어감이 비슷하지만 하늘과 땅만큼 그 의미가 딴판인 어휘에,'시샘'과 '라이벌'이 있다. '시샘'은 서로 상처내고 죽이지만 '라이벌'을 '리버(江)'에 어원을 둔 말로 같은 물을 경쟁적으로 퍼 올리지만 강물이 마르면 같이 망한다는 걸 서로 의식하며 공생의 길을 가는 것이 '라이벌'이다. 일본의 '혼다'는 라이벌인 '도요다(豊田)'가 있어서 오늘의 우리가 있다고 선전하는데 우리 업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약소한 동물도 외부의 강대한 동물 족에게 멸망한 경우는 적다. 내부에서 서로 죽이기를 할 때 멸종의 위기를 맞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동물의 왕국 같은 TV프로그램을 보고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꽃샘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정치는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외적도 불러들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여유! 원주 시내 낮은 지대의 꽃들은 서로 다투어 꽃을 피우더니 이번 꽃샘추위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그 경쟁에 끼어들지 않은 내 산방 둘레의 꽃들은 지금 느지막하게 꽃 피울 채비를 하니 꽃샘 바람 같은 건 안 겪어도 될런지.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