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 반달

산방의 반달

[ 산방일기 ] 산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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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6일(수) 00:00
장돈식

환한 빛에 잠을 깼다굨 새벽하늘에 앞산을 넘어 돋은 달빛이다. 내가 좀 둔감한 탓인지 선 자리 가까이 벼락이 떨어진다 해도 그다지 호들갑스럽게 놀라지는 않을 터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방안에 든 달빛에는 놀란다. 주섬주섬 옷을 끼어 입고 뜰에 내려서며 달빛아래를 걷는다.

   
반가웠다. 찾는 이 없는 이 산방이건만 저 달은 유신(有信)하여 이 새벽에 내 침실을 찾아 든 것이다. 머리 위의 달을 우러르며 걷노라면 나보다 한 십보 앞서가며 따라잡히지를 않는다. 이 시각에 온 달도 아닌 저 상현 (上弦)의 반달을 바라보는 이는 나 말고 또 얼마나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끼리라면 서로 말을 맞추어 같은 시간에 바라볼 수도 있으리라.

저 달은 하나건만 두 곳을 비추네
우리는 떠나 천리 길 만날 바 없나니
밤마다 달빛 따라 임의 곳에 갈거나
(一月兩地照 二人千里隔 願隨此月影 夜照君側)

조선조 중엽의 여류시인 삼의당 김씨(三宜堂金氏)가 지은 '추야월(秋夜月)'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옛 사람들도 떨어져 있는 연인들이 달을 사이에 두고 정을 나누었음이 살갑게 느껴진다.

지난 초가을 한가위 때는 오늘처럼 하늘이 맑지 않았다.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달을 보느라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더러는 만월(滿月)을 먼저 보려고 동해안을 찾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길이 메었다고 한다.

세상은 모두 꽉 찬것, 둥글고 이울지 않은 것을 좋아하고, 모자라고 결손이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불려지는 동요 가사에도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 인가요~'다. 반달은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 지능이 좀 모자라는 사람은 '반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만월도 7일 후면 이런 반달이 되고, 또 7일이 지나면 그믐달이 된다. 되풀이되는 현상인 줄 알면서도 온달만 선호하는 것에 머무는 세정(世情)에서 안쓰러움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반달에 의미를 두어 이런 시를 읊었다.

반은 지상에 보이고 반은 천상에 보인다
둘이서 완상하는 하늘의 마음 꽃 한송이

이성신의 '반달'이라는 시다. 시인 정호승은 이 구(句)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그를 그리워하는 일은 하늘을 바라보는 일 외에 또 있을까, 반달이 보름달이 되는 까닭을 이제 알겠다"고 했다. 한 편의 시에서 반달이 보름달이 되는 이치를 깨닫는 가을은 위안이고 축복이기도 하다.

나는 6.25전란의 이듬해까지도 공산치하인 고향, 황해도에 머물러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세운 향리(鄕里)의 중학교와 아이들 때문에 월남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유엔군이 인천상륙을 하던 날 밤, 퇴각하려는 저들은 자기들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밤에 네 다섯 명의 기관원이 집으로 찾아와 나를 연행했다. 가면 죽든가 이북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산기슭을 지나다가 소변을 보겠노라며 포승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산으로 줄달음을 쳤다.

마구 총을 쏘아대며 뒤쫓는다. 죽을 기를 쓰며 어두운 산을 더듬어 올라 7부 능선쯤에 이르니 전쟁준비를 위해 파놓은 참호(塹壕)가 있다. 뛰어 드니, 거기에는 이미 저들에게 처단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수 십 구(具)가 버려져 있었다. 그 시체들을 헤집고 들어가 죽은 척 섞여 누었다. 우선 안심이 되었다. 산 아래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이 단념하고 돌아 갔나보다.

자정이 지났을까, 산마루에 달이 솟았다. 반달이 오늘처럼 밝았다. 멀리 인천방향에서는 우뢰 같은 포성과 화광(火光)이 밤을 지새운다. 그때 남쪽 하늘에서 북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UN군의 정찰기겠지. 명멸(明滅)하는 불빛이 달빛 아래로 날아간다. 울컥 서러움과 고마움의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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