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악마일까?

푸틴은 악마일까?

[ 인문학산책 ] 52

임채광 교수
2022년 04월 06일(수) 06:45
미국에서 활동했던 유대계 독일 사회철학자 마르쿠제(Herbert Marcuse).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5주째로 접어든 지난 2022년 3월 25일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을 향해 "우크라이나인들을 살상하기 위해 쳐들어온 악마"라고 부르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웠다. 실제로 이번 전쟁으로 양측에서 수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고, 서방 언론은 기록이 불가능한 정도의 피해와 사상자들을 보고하고 있다. 전쟁을 이끈 푸틴, 그는 정말로 악마일까?

"악마(惡魔)"라는 표현은 그 뿌리가 종교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리스어로는 디아블로스인데 '비방하는 자' 또는 '고발하는 자'라는 의미가 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비방하고 그에 맞서는 자를 지칭한다. 불교에서 악마는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켜 불도 수행을 방해하여 악한 길로 유혹하는 나쁜 귀신이다. 마(魔)는 산스크리트어 '마라(魔羅)'의 약자로 사람을 죽이거나 인간의 마음을 괴롭히는 악령을 말한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의로운 전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전쟁에 대해 "사치를 원하는 욕심의 결과"라고 전제하고 일종의 필요악으로 규정한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구성원의 삶을 수호하는 일이다. 대체로 전쟁은 인간이 더 많은 부와 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충동을 폭력적으로 분출시킨 결과물이다. 설혹 전쟁이 발생한다고 하여도 방어전쟁, 또는 평화와 상생을 위한 싸움이어야 한다. 군인들이 적들을 정벌할 때에도 약탈이나 비전투원 인력을 살해하거나 노예화, 또는 성폭행 등은 삼가야 한다.

칸트의 경우 전쟁에 대해 더욱 단호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국가는 자유로운 인격체, 자율적 권한을 보유한 개인의 집합체이다. 개인의 인격성에 대한 유명한 슬로건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 대해서건 다른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건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갓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 하라"고 강조하였듯, 인격적 개체들의 집합체인 국가도 국민의 수준에 따라 그 격(格)이 결정된다. '영구평화론'에서 칸트는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나 통치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여 간섭해서는 안된다"며 전쟁에 대해 금지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장래에 전쟁의 씨앗이 될만한 가능성을 보유한 채 체결되는 평화조약 조차도 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소유물이 될 수 없듯이 국가 역시 누군가 소유하거나 약탈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독일의 유대계 사회철학자 마르쿠제는 그의 저서의 여러 곳에 전쟁 관련 분석과 비판을 게재한 바 있다. 전쟁은 일종의 제도화된 폭력이다. 복지국가 또는 복지 사회를 표방하는 현대 사회는 전쟁을 발판삼아 작동하며, 전쟁을 준비하는 산업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기산업과 기술의 발달은 복지국가의 수준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이제 전쟁 산업은 단지 복지사회의 운용과 작동원리로서 긴요한 것이 아닌 개개인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욕구이자 의식체계 저변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플라톤으로부터 칸트와 마르쿠제의 전쟁에 대한 시각을 각각 훑어보았는데, 다시 푸틴의 주제로 돌아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들 모두 전쟁은 피해야 할 일이고, 플라톤의 경우와 같이 방어적 성격의 전쟁, 정의를 세우기 위한 전쟁에 대해 묵인했다고 하더라도 그 최종 목표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가 물질과 권력을 탐하는 욕망이 이성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소유를 향한 욕망을 절제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얻는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둘째, 전쟁은 모두를 악마로 만든다. 전쟁이 시작되면 전쟁을 일으킨 자와 생존을 위해 방어하고 맞서는 자 모두 괴물이 된다. 전쟁을 유발시킨 푸틴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과 지휘관들, 전장의 주역인 군인들, 시민군까지도 악행을 범하는 자로 돌변한다. 서로를 악마라 부르고, 반대편에서 볼 때 실제로 악귀로 보인다. 셋째, 칸트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거대한 국가체제를 지양하고 최소국가 형태로 유지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군대를 없애도록 주문한다. 상비군의 폐지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편 마르쿠제는 군수산업을 위한 전쟁, 힘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의 역학관계 속에서 약소국이 침탈당하는 현상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다음을 요구한다: ①현존하는 문화의 폭력적 현실을 강력히 부정해야 한다. ②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전쟁문화의 일상을 거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③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연대가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삶 자체가 주님의 계획안에서 존재의 목적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평화롭게 살아야하고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전쟁은 약자들이 강자에게 짓밟히고 생명을 구걸하는 잔인한 현실을 낳는다. 반인륜적이고 악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주변에서 전개되고 있는 전쟁은 있지 않을까? 총을 쏘고 비행기에서 폭탄을 퍼 붇는 전쟁이 아닌, 그러나 모두가 악마가 되는 그런 전쟁 말이다. 평화 그리고 사랑이 답이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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