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 마을, 마을 안에 학교 '밀알두레마을'

학교 안에 마을, 마을 안에 학교 '밀알두레마을'

[ 현장칼럼 ]

이호훈 목사
2019년 07월 22일(월) 00:00
학교에서 전반기 가장 큰 이슈는 마을 이장선거다. 선거기간이 시작되면 출마한 학생들은 선거공약을 만들고 본격적인 유세활동을 한다. 후보자들은 포스터를 붙이고, 각 반을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후배들에게도 연신 머리를 숙인다. 중등과정의 이장후보는 초등 1학년 학생들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공약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한다.

학교에 왠 이장인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밀알두레학교는 하나의 마을이자 작은 공화국과 같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밀알두레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사용한다. 이 돈은 학교 안에서 실질적인 경제수단이다. 학교화폐는 실제 현금으로 환전할 수도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한 가지씩 자기의 직업을 갖는다. 학생들은 공무원, 자영업자, 은행, 복지기관 등 여러 가지 직업들을 통해 학교(마을 공동체)를 운영하고 꾸려간다.

이렇게 아이들은 밀알두레학교라는 마을에서 대한민국의 한 시민이 되어가고, 하나님 나라의 마을지기로 자라가는 것이다.

밀알두레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 '나누소 가게'이다. 학교생활을 하며 필요한 생필품들도 판매하지만, 학생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들이 있는 유일한 곳이다. 나누소 가게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들은 금세 자기 가진 모든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밀알두레 은행은 하루에 두 번 문을 연다. 학생들은 그 곳에서 자기들이 수당으로 받은 돈을 저축한다. 또한 돈을 다 써버린 학생들은 신용도에 따라 대출을 받기도 한다. 간혹 대출해달라는 주민(학생)과 은행직원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돈 안 빌려준다고 따지는 주민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은행원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의 일터이다.

재정경제부 공무원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수당과 공무원 월급을 관리한다. 학생들, 교사들은 주민으로서 일주일에 한번씩 한 주치 수당을 받는다. 성실하게 의무를 다한 학생들은 일주일 학습량만큼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주민으로서의 자기 책임을 다한 것에 대한 당연한 권리로서의 보상이다. 이것은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 최고의 활약은 보건복지부 직원들이다. 그들은 급식을 받고 잔반처리하는 것을 매일 관리한다. 음식 남기는 것에 관해 벌금을 징수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건복지부 직원들을 피해 잔반처리를 하려는 얌체족들이 발각되어 실갱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이, 인생이 학교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자라가는 것이다.

아이 하나가 자라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한 알의 씨앗이 땅 속에 묻혀 홀로 싹을 틔울 수 없다. 햇빛과 비와 바람과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언 땅을 뚫고 세상에 생명을 발아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밥을 먹고 공부만 해서 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 우리들은 엄마의 사랑스런 잔소리와 아버지의 우직한 삶의 걸음 속에 자라났다. 형제들과 아웅다웅 선한 싸움하며, 해가 뉘엿뉘엿 지는 동네 골목길을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뛰었다. 마을 어귀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하고 심부름 가며 부르는 콧노래는 절로 흥이나는 어깨춤이 되었다. 뒷산에 올라 이슬에 젖은 밤을 줍고 군불을 피우는 아궁이 앞에 솔잎을 태우며 사람과 자연, 가정과 이웃 그리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했다.

밀알두레학교 안에 밀알두레마을 아이들도 마을 공동체 속에서 만나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체험하고 배운다. 밀알두레마을은 밀알두레학교의 학생들이 자라가는 배움터이고 삶의 현장이 된다.

이호훈 목사/예수길벗교회 담임목사, 밀알두레학교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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