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 길에서 오래된 미래를 품다

오래된 새 길에서 오래된 미래를 품다

[ 현장칼럼 ]

이호훈 목사
2019년 06월 25일(화) 00:00
"선(善)만 있어야 할 것 같은 곳에도 그 속에 악이 존재한다는 거야. 편안함, 따듯함, 쾌적함으로 가득한 방들에도 무시무시한 유령의 공포가 몰려오는 싱클레어의 상황이 나에게도 있는 것 같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 이 책에서 세상은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있다고 말하잖아. 두 세계의 경계는 매우 가깝다고 말하는데 나 또한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야. 밝은 세계(사랑이나 모범, 청명함, 깨끗함) 속에도 알고 보면 어둡고, 더럽고 무서운 것들이 숨어있기 마련이지. 사실 요즘 내가 그런 것 같거든."

데미안을 읽고 아이들이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눈 대화의 일부다. 학생들은 철학과 문학의 이론에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그러고 보면 문장의 구조나 문법과 같은 것을 반드시 전달하겠다는 교사의 맹신이 도리어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개념화된 지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범함과 대담함이 있다. 형식과 체면에 갇힌 어른들과는 다르다. 도리어 틀에 갇힌 나의 생각과 말(수업)이 가슴과 몸으로 느끼는 학생들의 책읽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밀알두레학교 학생들은 8,9학년 시기에 '기독교 고전'을 필수과정 수업으로 듣는다. 바라바, 천로역정, 죄와 벌, 고백록, 로빈슨 크루소 등 총 12권의 책을 읽는다.

기독교고전 수업은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독서의 능력을 배양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또한 신앙 성장에 그 목적이 있지도 않다. 한번쯤 오래된 옛 길(고전의 숲)을 걸어보는 것으로 수업은 충분하다. 비록 책을 다 읽지(완독) 못해도, 거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또한 그것이 고전수업의 결과나 성적을 결정하지 않는다.

기독교고전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은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자기 성취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기의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생활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쉽게 포기하거나, 외면해 버린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그늘 아래를 맴돌던 아이들은 청소년기가 되면 컴퓨터와 스마트폰 곁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이다.

고전 읽기는 마치 흰 쌀밥이 아니라 거친 현미밥을 먹는 것과 같다. 갓 구워낸 부드러운 빵이 아니라 딱딱하고 텁텁한 견과류를 씹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생명식탁이 되는 딱딱하고 거친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기독교 고전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옛 길과 같은 고전은 거칠고 어렵지만 그 속에 들어서고 나면 생명의 깊은 숨을 쉬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크게 고민하지 않고 넘어가던 책장이, 한 장, 한 장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즐기며 자유롭게 책 속을 산책하게 된다.

기독교고전 수업을 통해 밀알두레학교 학생들은 영혼의 거친 광야 길을 경험한다. 때론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처럼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순례의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걷는 고전의 숲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주님의 말씀을 체득하는 자리가 된다.

기독교 고전수업은 밀알두레학교의 밀알들에게 오래된 새 길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하나님 안에 꿈과 미래가 쌓이는 영적 순례이다.

이호훈 목사/예수길벗교회 담임목사, 밀알두레학교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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