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써니'

영화 '써니'

[ 말씀&MOVIE ]

최성수 박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0월 20일(목) 13:14

   
2011년 대종상에서 감독상을 안겨준 '써니'는 과거를 추억하는 영화다. 특히 7명의 여학생들이 만들었던 학창시절을 추억한다. 나미의 추억이라는 점에서 나미가 경험하고 느꼈던 과거이다. 이 시절에 대한 기억이 그녀에게 없지는 않았지만 그곳으로 들어갈 문을 찾지 못해, 다시 말해서 추억할 만한 계기가 없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또 딸과 동생으로서 요구되는 삶을 살다보니 지금은 어느새 중년의 시간을 살아가는 주부다.
 
삶이 건조하게 느껴지고 또 삶의 공간이 답답하게 여겨지려는 때에 그녀에게 학창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사람은 춘화다. 그녀는 폐암 말기 환자로 두 달 정도 남은 생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죽기 전에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나미는 7공주 멤버들을 하나 둘씩 찾아 나선다. 그 문에 들어서자 나미의 단편적인 기억들은 이름과 더불어, 그리고 당시의 기록물과 함께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는다. 추억하는 동안 그녀의 학창시절은 이제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의 한 곳이다.
 
'써니'가 던진 화두 '역사의 주인으로서 살아간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여성으로서 역사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때다. 섣불리 여성 해방과 연결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영화는 이념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가 약속한 '써니'라는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것이다. 대학생 오빠의 노동자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단지 기억에 불과할 뿐이고, 그것이 현재에 차지하는 공간은 전혀 없다. 80년대에 벌어진 치열한 투쟁의 역사도 결국 학생들의 패싸움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상을 주는 장면은 아무리 강한 신념이라도 현실에 따라 변하게 마련일 뿐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 있음을 영화는 강조한다. 코믹한 현실에서 진정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써니' 멤버들의 약속이다. 그 약속은 단순히 다시 모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의 약속이었다.
 
둘째, 짱의 죽음을 계기로 모두가 하나로 모임과 동시에 과거는 현재를 넘어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과거가 이렇게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의미 때문인데, 바로 '써니'의 약속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약속을 지킨 짱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셋째, 그래서 짱의 죽음은 결코 슬퍼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미래를 위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그녀가 죽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을 죽음으로써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학창시절에 미처 추지 못했던 춤으로 마무리 한 것은 써니의 새로운 출발을 말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면이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영웅이나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업적을 생각한다면 영화를 오해하는 것이다. 영화는 평범한 여성을 전제로 하고 또 그 모습에서 벗어나는 환상을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말은 현재와 미래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가치를 위해 사는 사람을 강조한다.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에 현혹되어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최성수목사/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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