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교회로 성장하게 한 칼뱅의 '프로페짜이'

말씀의 교회로 성장하게 한 칼뱅의 '프로페짜이'

[ 말씀프로페짜이 ]

박영호 목사
2024년 10월 17일(목) 11:16
츠빙글리가 취리히에서 1525년에 프로페짜이를 시작했고, 칼뱅은 1536년부터 제네바에서 '콩그레가시옹'이라는 이름으로 목회자 성서연구모임을 이끌었다. 제네바의 목회자들은 매주 금요일 오전에 성서를 읽고, 주석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가졌다. 성경 한 권을 정해서 계속해서 다루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한 후에 그날 주어진 성서 구절을 읽는다. 취리히에서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읽고 나서 독일어 해설을 했지만, 제네바에서는 프랑스어로 읽는 것이 주였던 것 같다. 취리히에서는 주 5회 모였고 학문적인 연구의 분위기가 강했고, 제네바에서는 목회적이고 실제적인 토론이 많았다.

먼저 기도하고 나서, 그 날 정해진 본문을 읽은 다음 맡은 사람이 본문을 해설한다. 설교라기 보다는 절 별로 강의해 나가는 식이었다. 그 후에 참석자들의 의견을 구한다. 칼뱅은 이 순서를 맡았을 때 이렇게 말한 것이 전해진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마땅히 해야 할 정도로 충분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더 좋은 은사를 받은 형제들께서 전체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깨달을 바에 따라서 제 설명에 의견을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겸손이 대화를 촉진할 뿐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에 열린 자세를 가능하게 했다. 함께 모이는 열심과 더 나은 통찰을 위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열린 자세는 성령의 역사하실 여지를 열었다. 한 두 사람이 토론을 독점하기 보다 돌아가면서 의견을 나누면서 성경본문에 대한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토론을 끝내면서는 전체를 간단히 요약하거나, 결론적 진술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치는 기도를 한다.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목회적인 필요나 도전, 특별히 박해받는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고린도전서 14장 29~33절에서 바울이 권고한 바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유로우면서 질서있게 토론하려는 노력이었다. 질서라는 면은 칼뱅이 로잔에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로잔은 도시의 크기를 고려할 때 세 개의 성서모임이 필요할 것이라 권했다. 자유롭게 토론하되, 이미 확립된 개혁에 반하는 주제를 제기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실수를 범한 이들은 개인적으로 견책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한 현학적인 교묘함이나 논쟁이 아니라 최선의 유익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콩그레가시옹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목회자의 성서연구와 계속교육이었다. 칼뱅은 제네바의 모든 목회자들이 이 모임에 의무적으로 참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이 모임이 제네바 목회자들의 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참석한 목회자들은 모임에서 나눈 설명과 통찰을 자료 삼아 설교준비를 해 나갔다. 설교준비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며 설교자로서 성장해 갈 뿐 아니라, 설교의 공동체성이 확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목회자들이 서로 격려하고, 교정하며 견책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로 돌아 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히 10:24)" 장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누구보다 목회자에게 필요한다. 이 모임은 목회자들이 서로 격려하며 도전 받고, 때로 견책 받으며 개혁교회의 정신을 유지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가 칼뱅 주석이라고 알고 있는 책들도 대부분 칼뱅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 콩그레가시옹에서 함께 나눈 바를 속기사가 기록했고, 그 내용을 토대로 정리된 것이다. 칼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공동작업의 산물이라는 '집단지성'의 오랜 예일 뿐 아니라, 성경이 공동체의 책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되새긴다. 취리히와 제네반 뿐 아니라, 로잔에서는 클라시스, 런던에서는 프로페사잉, 에딘버러에서는 엑서싸이즈, 스트라스부르그에서는 크리스틀리헤 위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목회자의 성서연구 모임이 계속되어 나갔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라 말씀의 교회로 성장하게 한 핵심적인 동력이 이 모임에 있었다.

박영호 목사 / 포항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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