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선교사 아브라함처럼"

"최초의 선교사 아브라함처럼"

[ 땅끝편지 ] 김경근 선교사 1

김경근 선교사
2024년 10월 09일(수) 08:57
중학교 시절 형 친구 아버지가 선교사라고 들었다. 선교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막연한 존경심과 신비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 선교사가 현재 '나'라는 것이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2024년 한국에는 2만여 명의 해외 파송 선교사가 있고, 전체 인구에 0.04%이다. 일반 사회에서는 우연히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이다. 선교사는 특별히 선택받은 교회의 일꾼이다.

필자는 크로아티아 선교사다. 선교사로 파송된 지 15년이 되었다. 길다면 긴 세월 동안의 선교 이야기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경험해 보지 못했고, 온전한 회심과 제자 양육에 성공한 적도 없다.

그러면 선교 이야기는 없나? 꼭 그렇진 않다. 역사는 없지만 사건은 있고, 부흥은 없지만 여전히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땅 크로아티아에서 표도 없고, 티도 안 나며, 열매도 더딘 삶을 살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소망이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내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 지어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유럽 선교사로서 내게 맞는 옷(jacket) 같다.

선교라 하면 바울이 연상되지 않나? 3차 선교 여행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한 사도. 기적과 능력, 회심과 변화 그리고 박해를 한 몸에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 시킨 믿음의 사람. 사도 바울.

그러나 실제 유럽의 선교사로 살아보니 바울보다 아브라함이 더 친근히 여겨진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낯선 땅에 들어와, 그 땅에 정착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고 그곳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믿음으로 살다 한 알의 밀알로 퇴장하는 아브라함. 사실 아브라함이 바울 이전의 최초 선교사였다.

기적이 일어나고 회심이 따르는 화려한 이야기가 아닌, 애환과 인내와 소망으로 간절한 이야기. 그 이야기는 너무 개인적이고, 영적이며, 또 주관적이라 빙산(iceberg)의 보이는 10%가 아닌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90%의 이야기다. 그래서 화려하고 보이는 것에 환호하는 세상에서는 잘 나눌 수 없는 선교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래전 선교사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뭐 별다른 게 있었을까? 그저 평범하고 단조로운 광야와, 지루하고 성가신 일상이었으리라. 주변은 온통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신앙도 달랐지만, 그는 하나님께 받은 약속의 땅에서 제단을 쌓고 묵묵히 하루를 순종하며 살았다.

나에게 선교 이야기는 아브라함처럼 소명의 땅에서 제단을 쌓고 하루하루 믿음으로 사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에는 비교도 자랑도 우월도 열등도 없다. 흥분보다 단조롭고 지루하기마저 하다. 하지만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 선수같이 숨을 고르며 자기 페이스에 맞춰 완주하는 잔잔한 감동과 인내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기독공보에서 '땅끝 편지'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망설였다. 글재주도 별로 없고, 도리어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면 뭐 어떠랴! 망신이야 늘 선교 현장에서 당하는 것인걸. 선교 이야기가 늘 감동과 승리만 있으랴! 내 경험에는 감동과 승전보도 있지만, 동시에 실수와 패전보도 많았다. 그래서 용기 내어 그런 이야기를 소소하게 적어보려 한다.

이번 2024년 로잔 선교대회에 참석하는 크로아티아 현지 대표가 물었다. "왜 크로아티아에 와서 오래 사냐?"고…. 대답했다. "이유는 없다. 단지 그곳에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라고….

크로아티아 선교 이야기는 필자인 '나'의 부르심과 결단, 선교사로서의 준비 과정, 그리고 소명의 땅 크로아티아에서 좌충우돌하며 목격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지금 내 안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에 관한 경험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너무 주관적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개 무명 선교사의 이야기라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김경근 선교사 / 크로아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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