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영화 '도가니'

[ 말씀&MOVIE ]

최성수박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0월 05일(수) 11:15
   

영화에는 공공신학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공공신학은 교회와 신학의 사회적인 책임을 신학적으로 성찰한다.

사회윤리의 주제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공공신학의 주제는 윤리적인 측면에 제한되지 않는다. 공공신학의 중점은 세상과 교회의 소통에 있고 또한 더 나아가서 복음의 영향력을 높이는 일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게서 공공신학적인 의미를 묻는다 함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과 양자의 소통에서 영화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실 재현이라는 영화의 본질적인 기능에 착안한 것인데, 현실을 시청각 이미지로 보여줌으로써 공적인 영역을 다양하게 조명하며, 보는 자들에게 공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책임있는 행위를 촉구한다.

영화가 공공신학을 실천하는 것은 영화가 갖는 힘, 곧 대중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신학자들의 신학함보다 그리고 목회자들의 목회사역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보고도 방관자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다.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는 이야기지만, 부당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보고도 보지 않은 듯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만난 자에게 보여준 태도와 같이,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그저 쳐다보거나 아니면 자리를 뜨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때 그리고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보는 자에게는 언제나 책임이 주어지는 법이다.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보는 것이 축복이며 동시에 소명임을 환기시킨다.

 따라서 함부로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하지만, 만일 보았다면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계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를 보았다. 공지영 소설이 원작이다. '기쁨의 도가니' '열광의 도가니' 등과 같이 비유적인 의미에서 흔히 쓰이는 수식어가 없는 까닭은 아마도 독자나 관객의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적인 반응을 섣불리 규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만큼 비극적인 현실을 바라보았던 저자의 착잡한 심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공황상태, 말없음의 상태,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작가 공지영은 어린 장애인들이 당한 부당하며 부조리한 일들을 듣고 또 보았으며,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 글을 읽으며 배우 특유의 상상력으로 현실을 보았음에 틀림없는 공유 역시 그것의 영화화를 사명으로 삼고 작가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 그리고 마침내 황동혁감독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그' 끔찍한 현실을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는 자는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며, 오늘날 교회와 신앙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방관자의 자세로 일관한다면, 자신의 신앙과 교회현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도 깨닫지 못한다면, 깨어있다고 하지만 잠자고 있는 것이며, 살아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다.

우리는 왜 교회에 나가는지,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영화 속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면서 내 가슴 속을 파고들었던 두 개의 질문이다. 무슨 말을 하랴, 직접 보고 느끼고 또 분노하며 부르심에 반응하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겠다. '지옥같은 현실'을 보고 난 후 지금 난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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