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금'

'푸른 소금'

[ 말씀&MOVIE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9월 29일(목) 13:55

감독: 이현승  2011, 15세

  

   
푸른색과 관련해서 필자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피카소의 청색시대이다.
 
'청색시대'란 1901년에서 1904년까지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청색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인데, 피카소는 자신의 가난한 삶과 우울한 정서를 청색으로 표현했다. 굳이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블루는 충분히 멜랑꼴리를 느끼게 한다.
 
깊이 침잠할 듯한 고독과 우수를 나타내는 푸른색 분위기와 하얀 색 결정체 소금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물론 바다와 하늘의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염전을 배경으로 연출된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만든 제목이겠지만, '푸른 소금'은 소금 자체가 갖는 생명력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어둠에 둘러쌓인 블루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어가 존재마저도 삼켜버릴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비해, 소금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고 또 썩어가는 것을 썩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영화 제목에서부터 영화는 킬러와 목표물로서 두 사람의 만남을 그렇게 규정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존재감이 상실되는 순간에 진가를 발휘하는 의미를 '푸른 소름'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조직의 보스로서 은퇴하여 식당을 개업하여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 두헌은 깊은 고독과 우수로 가득하다. 비록 요리 학원을 다니기는 하지만 언제나 혼자고, 학원이 끝난 후에는 바닷가에 하루 종일 머물러 있다가 집으로 간다. 자신으로 인해 엄마가 죽은 사실에 대해 깊은 회한을 느끼며 살아간다. 감독은 그의 주변을 언제나 블루 조명로 채색함으로써 그의 고독하고 우수적인 정서를 표현했다. 두헌은 캐릭터상 푸른 존재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세빈은 전직 사격선수다. 교통사고 이후에 사격을 그만두어야 했고 또 사채 빚을 갚기 위해 두헌을 감시하는 일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친구와 함께 거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세빈이나, 조직을 떠나 식당개업을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는 동안에 오히려 조직으로부터 배척되는 두헌, 두 사람 모두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을 경우 압도하는 고독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달랐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만남 사이에는 마치 염전에서 오랜 수고 끝에 마침내 소금이 결정되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형성되고 있었다.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특히 두헌은 세빈과 친구를 위해서 죽음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였지만, 두헌에게는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녀를 대하는 그의 마음, 그것으로 인해 그를 죽이기 위해 접근했던 세빈의 마음은 흔들린다. 그리고 마침내 두헌을 위험에서 구해낸다. 영화는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서도 두 사람의 관계와 의미를 성찰한다. 음식의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누군가에 의해 요리되지 않으면 맛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두 사람의 관계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비록 우울한 정서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이지만 함께 있을 때 그리고 서로가 서로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자 했을 때 색다른 맛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푸른 소금'에서 필자는 사람의 변화와 그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었다.

   

 

 

 

 

최성수목사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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