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기숙사 생활 |2012. 06.19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나는 기숙사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모두 나에게 친절했고 서툰 영어로 낯선 미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했다. 한국에서 나는 여교역자로서 희색 저고리에 검정색 통치마 한복생활이 몸에 익었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복 대신 거의 날마다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다. 무채색의 옷이 편했으므로 한 주일 내내 그것만 입고 다녔다. 미국 친구들은 매일 …

크레이머 총장과의 첫 만남 |2012.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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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랫동안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며 준비해 온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의 리치먼드 공항에 도착하던 날 난생 처음으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디는 흥분을 가라 앉히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 동안 비행기가 착륙했다. 공항에서 학교까지는 꽤 먼 거리여서 누가 이곳까지 마중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점을 익히 잘 아는 대학 행정 담당자는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편지로 자세히 공항에서 …

우여곡절 끝에 미국 유학을 떠나다 |20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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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떠나가는 길을 밟으며 나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가슴 엑스레이 사진촬영을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폐결핵이 성행했으므로 미국 유학생은 반드시 가슴 엑스레이 사진필름을 지참하고 입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사진촬영 판독 결과 내 가슴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나는 폐결핵을 앓은 적이 없었는데 엑스레이 사진에는 이 병을 앓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진 판독에 따라…

김필례 선생님의 헌신과 모범 |20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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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은 각 반 담임 선생님께 등록금을 내지 못한 학생들의 명단을 파악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전교의 각 교실마다 미등록 학생들의 명단이 작성되어 교장실로 보고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보고된 학생들의 가정 형편을 낱낱이 파악하였고,그 학생들 중에서 장학금이 꼭 필요한 아이들을 선별하고 그들을 위해 영문으로 장학 추천서를 타이핑하셨다. 이렇게 학생들을 성실하게 사랑하는 김필례…

학생 9백명 참석하는 '등교기도회' |2012.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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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관한 그분의 지속적인 호평이 아마도 학교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분이 나에게 호의를 가진 까닭은 내가 그분의 말씀에 잘 순정하며 무조건 고분고분 그 앞에 엎드려 맹종한 때문이 아니고, 그분과 함께 힘써 창의적으로 교목실의 분위기를 밝고 즐겁게 만들면서 교목실의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진심 …

정신여ㆍ중고의 교목으로 |201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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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정신여자ㆍ고등학교에 부임하면서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1948년 후반부터 1950년 6ㆍ25 전쟁이 발발할 대까지, 또 1953년 휴전협정 직후 남산으로 복귀한 장로회신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생이었으므로 서울의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직장인으로서 거주할 집을 구해야 했다. 집 얻을 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을 찾다가 학교 근처에 있는 주택의 사랑채에 …

기도 끝에 정신여중ㆍ고로 |2012.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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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들은 나는 즉각 거절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나에게 정신학교로 갈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대구에서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고, 그곳에 있다가 미국으로 유학 가는 길이 열리면 떠날 계획입니다. 그래서 내가 대구를 떠나 서울로 이사 갈 이유가 전혀 없으니 나는 김필례교장을 만나보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전도사는 내 생각을 돌려 놓고자 했다. …

정신여중ㆍ고 최초의 여성 성경 교사로 |20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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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교 본과를 졸업한 나는 서문교회와 경북고등성경학교의 청빙을 받았다. 주일에는 교육전도사로서 서문교회를 섬겼고 주중에는 교사로서 경북고등성경학교에서 성경과목을 가르쳤다. 고등성경학교의 교장에 노일연선교사가 시무했고 전임 교원은 나 혼자였다. 이 학교에 여러 목사님들이 출강하여 한두 과목씩 강의를 맡았다. 학생 수는 그럭저럭 2백명 쯤 되었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중에…

주선애교수와의 1년 동거 |2012.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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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신학교 3,4년 선배인 주선애선생이 나와 함께 약 1년 동안 같은 방에서 생활하셨다. 주 선생은 이때 대구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딱히 머무를 숙소가 없는 처지였다. 이때의 주 선생은 열심히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서문교회 사택 문간방에서 둘이 함께 지냈다. 아침에 자그마한 밥솥에 밥을 지으면 주 선생과 내가 딱 절반씩 나누어 먹었다. 점심은 거의 굶…

대구에서의 피난 생활 |2012.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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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도착하니 전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으로 가득했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사람들로 차고 넘쳤다. 집 안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등의 방마다 최소한 한 가족 이상이 살았고 심지어는 대청마루에도 한두 가족이 지냈다. 마당에는 군데군데 밥 해먹는 간이 아궁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대구 시민과 피난민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서 서로 돕고 돌보며 지냈다. 시내의 교회 건물도 모두 피난…

힘겨운 피난생활 |201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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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겁이 나고 무서워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냥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섰다. 조순덕을 잡아가는 인민군 일행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 사람은 분명 우리 조카 며느리요. 우리 조카가 함경도에서 결혼해서 데려온 사람인데, 이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 잘못되었으면 차라리 날 총살하시오. 난 죽어도 좋소. 이 젊은 사람을 끌고 가면 어떡합니까?"하고…

아버지와의 재회와 6ㆍ25 전쟁 |201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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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는 아버지를 찾았고 부녀가 정말이지 극적으로 만났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의 옷매무새와 얼굴 형색에서 매우 초라하고 초췌한 느낌을 받았다. 거칠고 깡마른 아버지의 몰골에서 사업의 실패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사정을 자세히 듣고 보니 실제로 그러했다.  2년 전 아버지가 새로운 사업을 도모하고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실 때 사업자금을 꽤 많…

남(南)으로 가는 길 |201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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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덕,김진실,그리고 나는 남한으로 가기로 했다. 김진실은 황해도 출신이며 조순덕과 동급생이고 나보다 두세 살 위였다. 우리 셋은 거사를 위해 특별기도회를 갖고 남한으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기차와 배를 타고 개성까지 가는데 셋이서 함께 타는 것이 아니라 따로 타서 추후 열차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순덕이 시골 아낙네로 변항하고서 기차로 겸이포에 도착하면,내가 겸이포에서 그 기차에 올라…

배움을 위한 또다른 길 |2012.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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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한 학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학기말로 접어들 무렵 김순호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 순간 '아이쿠,조순덕 요것이 고자질 했구나. 내가 사치하고 다닌다고'하면서 지레짐작 했다. 그런데 선생님을 찾아 뵈니 그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심한 감기몸살로 고생하는 조순덕을 나에게 부탁하시고자 찾으셨던 것이었다.  "이언옥 씨는 친척집에서 통학하는 것 같은데 기숙사의 식사가 형편없잖아…

평양여자신학교에서의 시작 |20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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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된 나는 희망찬 내일을 위해 고향을 떠나 평양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뜻을 품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살 길은 교육 뿐인데 이를 위해 교사가 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역시 막연하나마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서라도 어머니를 설득해 평양의 교육대학에 입학하고자 했다. 그 대학은 2년제 전문대학이었다. 나의 계획을 들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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