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여ㆍ중고의 교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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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15일(화) 14:58

1958년 정신여자ㆍ고등학교에 부임하면서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1948년 후반부터 1950년 6ㆍ25 전쟁이 발발할 대까지, 또 1953년 휴전협정 직후 남산으로 복귀한 장로회신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생이었으므로 서울의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직장인으로서 거주할 집을 구해야 했다. 집 얻을 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을 찾다가 학교 근처에 있는 주택의 사랑채에 세를 얻어 입주하게 되었다. 전(월)세 비용을 학교가 빌려 주었다. 그 돈을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갚아 나가기로 했다. 정신여자ㆍ고등학교 교목실에 소속된 나는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에서 자주 설교했다. 교목실 실장은 김성권목사님이었는데 교목실 전임 교원이 목사님과 나, 이렇게 둘이었다. 이 밖에도 시간 강사로 학교에 오시는 목사님 몇 분이 드문드문 교목실에 오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김성권목사님이 그 당시 10여 년 뒤에 나의 남편이 될 임옥 목사님과 아주 가까이 지내셨다. 두 분은 자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학교에서 운동(농구) 시합을 즐겼다.
 
전교생 모두가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채플실이 없어서 학년 별로 나눠 예배를 드렸다. 1학년, 2학년 3학년이 각각 예배를 드렸는데 설교자는 똑 같은 설교를 세 번 반복해야 했다. 예배 인도와 설교는 김성권목사님과 나, 그리고 강사 목사님 두 분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그래서 네 번에 한 번 꼴로 설교 순서가 돌아왔다. 그런데 김 목사님이 자기 설교 순서가 될 때면 자주 나에게 설교를 부탁하곤 하셨다. "이 선생, 내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부탁하는데 다음 주간 설교 좀 해주세요.", "네? 다음 주간의 설교는 목사님 순서인 줄 아는데요. 목사님, 저는 설교 맡은 주간에는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감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습니다. 목사님 순서에는 목사님이 하셔야지요.", "이 선생, 내가 교목실장으로서 명령하는 거요. 상사가 명령하면 부하직원이 따라야지." 이런 식으로 자주 내가 김 목사님 대신에 예배인도와 설교를 맡았다.
 
나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목사님의 설교 부탁을 피하갈 수 있을지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다. 한 가지 방도를 생각해 냈는데 월급 받는 날이면 내가 목사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가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해 드렸다. 식사 후에는 맛있는 과자도 사서 목사님 손에 들려드리며 아이들 갖다 주라고 선물까지 챙겨 드렸다. 제발 나에게 설교 부탁을 하지 마시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네 번에 세번 정도는 강사 목사님들까지 초대해 저녁식사를 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나의 생각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이 선생, 밥만 먹지 말고 영화도 봅시다."라며 모두를 이끌고 영화관으로 갔다. 영화감상을 무척 좋아하시는 목사님은 늘 사람들과 더불어 밥 먹고 영화보기를 즐기셨다.
 
그러다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교목실 한쪽 공간에 가정과 선생님들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정신학원에 교사 수가 늘어남에 따라 교무실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아져서 선생님들의 책상 놓을 자리가 적은지라 가정과 선생님 세 분이 교목실로 옮겨왔다. 이에 그 선생님들도 우리 친교모임에 합류하게 되었고 순서를 짜서 돌아가며 차례대로 식사대접하고 영화도 보았다. 이리하여 제발 나에게 설교 부탁하지 마시라는 무언의 표시로 시작된 식사대접이 재미있고 즐거운 교사 친목모임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내가 김 목사님께 간절히 바라던 그 약발은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다.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내가 어찌하여 정신여자ㆍ고등학교의 교장이 되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된 과정에는 교목실장 김성권목사님의 덕이 컸다. 그 당시에 정신학원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소위 중역회의를 했는데 이 회의에 교장 선생님 이하 교감 선생님과 학년 주임 선생님 등이 참석했고 교목실 실장도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김 목사님이 기회 있을 대마다 나를 칭찬하셨다는 이야기를 후문으로 들었다.

 
이연옥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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