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끝에 정신여중ㆍ고로

기도 끝에 정신여중ㆍ고로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08일(화) 11:09
설명을 들은 나는 즉각 거절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나에게 정신학교로 갈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대구에서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고, 그곳에 있다가 미국으로 유학 가는 길이 열리면 떠날 계획입니다. 그래서 내가 대구를 떠나 서울로 이사 갈 이유가 전혀 없으니 나는 김필례교장을 만나보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전도사는 내 생각을 돌려 놓고자 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서울로 올라와야지! 정신여자중ㆍ고등학교는 전교생이 1천5백명이라고요! 대구의 고등성경학교의 전교생은 고작해야 2백명에 불과하지 않아요? 이것만 비교해 봐도 서울로 올라올 이유가 충분히 있어요." 그러자 나는 다시 말했다. "아니에요. 이 전도사님. 숫자를 들이대며 비교가 되느니 안되느니 말하지 마세요. 나는 2백명으로 만족하니까 내게는 숫자의 적고 많음이 별 의미가 없어요. 좌우지간 난 이번에 김필례교장을 만나지 않겠어요." 그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다가 이것이 언쟁이 되고 결국은 큰 소리로 다투게 되었다.
 
대구에 그냥 남아 있겠다는 나의 의지를 이 전도사에게 확실하게 밝힌 다음 나는 서울로 올라온 김에 종로서적에 들러 책을 사기로 했다. 노량진교회 근처에서 종로로 가는 전차가 있어서 우리 둘이 종로행 전차를 탔다. 전차 안에서도 우리는 계속 싸우다시피 자기 입장을 내세웠다. 그렇게 한참 입씨름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전차가 종로서적 근처 정류장을 지나쳤고 원남동 근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정신여자ㆍ중고등학교가 바로 그 근처에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이 전도사가 또 다시 나를 졸랐다. "이거 하나님 뜻 아니겠어요?"하더니 김필례교장을 만나자는 것이었다. 내 대답이 곱게 나올리가 없었다. "별걸 다 갖고 하나님 뜻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미처 내려야 할 정류장에 내리지 못한 것 뿐인데 전차 타고 어디로 잘못 가서 도착하면 그게 다 하나님 뜻인가요?" 그렇게 다투다가 이 전도사의 제안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정신여자중ㆍ고등학교 교정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교장실을 찾아갔다. 처음 뵙는 김필례교장 선생님 앞인지라 매우 긴장되고 조심스러웠으나 내 입장은 확고했기에 "교장 선생님, 저를 데려올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대구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김 교장 선생님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이 선생님, 기도해 보실 수는 있지 않습니까? 두 주간만 기도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나를 당황스럽게 하면서도 약간의 감동을 주었다. 내가 교장 선생님께 예의에 벗어날 정도로 생뚱맞게 말씀드렸는데도 그 분은 나에게 환한 미소로 응하며 기도해 보라고 하시니 조금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나는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노일연선교사에게 서울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이 매우 합리적인 충고를 해 주셨다. "이 선생, 정신여고에서 일하는 것이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좋은지 나쁜지는 일단 유보해 놓고 생각해 보아요. 당신이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데 입국허가 비자를 내어 주는 미국 대사관이 서울에 있으니까 대구에 있는 것보다는 서울에 있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대구에서 서울 한번 가려면 많은 경비와 시간을 들여야 하므로 미국 대사관이 있는 서울에 살며 유학 수속을 밟는 것이 더 낫다는 충고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미 김필례교장 선생님께 그 학교로 전근가지 않겠다고 분명히 대답했다는 점이었다. 이 점에 관하여도 노일연선교사가 충고해 주셨다. 내가 그 학교의 청빙을 받은 것은 김필례교장이 계일승학장에게 여성 졸업생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아직도 계일승학장의 추천이 그대로 살아 있으니 내가 김필례교장에게 드린 말씀에 전혀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대구를 떠나 서울로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노일연선교사께 그 결정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노 선교사가 떠나는 조건을 거는 것이었다. 경북고등성경학교를 위해 "당신만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구해 놓고 나서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을 구해 놓지 못하면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 저 사람 떠올리며 후임자를 물색했다. 그때 마침 신학교 2년 후배 송영숙이 떠올랐다. 그는 매우 학구적이며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므로 적임자라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연락을 했더니 당장에 "좋다!"고 응답했다. 그래서 송 전도사를 교장 노 선교사에게 소개해 드렸다. 첫 만남에서 교장 선교사님도 송 전도사를 매우 흡족해 했다. 그리하여 나는 경북고등성경학교와 서문교회를 사직하고 대구를 떠나 서울로 와서 정신여자중ㆍ고등학교에 부임했다.
 
 
이연옥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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