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여중ㆍ고 최초의 여성 성경 교사로

정신여중ㆍ고 최초의 여성 성경 교사로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16>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30일(월) 15:56

장로회신학교 본과를 졸업한 나는 서문교회와 경북고등성경학교의 청빙을 받았다. 주일에는 교육전도사로서 서문교회를 섬겼고 주중에는 교사로서 경북고등성경학교에서 성경과목을 가르쳤다. 고등성경학교의 교장에 노일연선교사가 시무했고 전임 교원은 나 혼자였다. 이 학교에 여러 목사님들이 출강하여 한두 과목씩 강의를 맡았다. 학생 수는 그럭저럭 2백명 쯤 되었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중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며 부지런히 일하는 가운데 배움에 대한 나의 열정이 계속 타올랐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좀 더 배우며 공부하고 싶었다. 유학 준비를 위해 한 주간에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일해야 했지만 일반 대학에 편입하기로 했다. 내가 신학교의 본과를 졸업했으므로 대학 3학년에 편입할 수가 있었다. 나는 1955년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편입했다. 성결교 군목이 나와 함께 편입했다. 역시 이 대학에서도 여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학과에는 여학생이 둘 뿐이었다. 사학과는 사적지 답사를 자주 다녔다. 한번 답사를 떠나면 대략 보름 정도를 다녔다. 내 기억에는 인솔 교수님이 네 분이었다. 한국사를 가르치신 박용규교수와 노명식교수, 그리고 김익호교수가 기억에 남아 있다. 사적지 답사는 강의실을 잠시 벗어나서 단체여행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낮에는 고고학 관련 수업이 진행되었고 저녁 식사부터는 먹고 마시며 즐겁게 노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종종 밥을 먹으며 술잔이 오고가야 했다. 교수님들이 술을 찾았고 학생들도 술을 마시고 싶어했다. 그런데 회계를 맡은 내가 술 값 지출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면 남학생들이 "고기 안 먹어도 좋으니 딱 한 잔만 하자"고 보채듯이 요구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 든 학생이었기에 남학생들은 누나에게 채근하듯 술 마시게 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아무튼 간에 사학과 학생으로서 교실 밖 사적지 답사와 강의실 수업이 나에게는 아주 귀중한 배움의 기간이었고, 수업의 재미에 푹 빠져든 기간이었다. 대학에서 배운 역사과목 수업이 나로 하여금 역사에 관한 지식을 풍요롭게 했을 뿐 아니라 역사 의식도 심어 주었다. 1957년 3월 9일 나는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졸업생은 22명이었다. 그 해 졸업한 졸업생 다수가 나중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로 일했고, 학교 다닐 때는 예수 믿는 사람이 나 혼자였는데 나중에 장로가 된 분들도 몇몇이 있었다. 나는 대구에서 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고등성경학교의 교사로서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였다. 언젠가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 노량진교회 이필숙전도사가 나에게 얼른 서울로 올라오라는 전보를 보냈다. 그는 나보다 나이는 한두 살 아래였지만 신학교 3년 선배였는데 아마도 주선애선생과 동기였을 것이다. 나는 근무하는 고등성경학교의 교장 노일연선교사에게 출장 허락을 받아서 곧장 서울행 기차를 탔다. 노량진교회 사택에 도착하니 이 전도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간략하게 인사를 나눈 뒤 용건부터 이야기했다. 이 전도사는 나더러 정신여자중ㆍ고등학교 교장 김필례선생님을 만나 보라고 했다. 뜻밖의 말에 나는 무슨 일로 만나라는 것인지 몹시 궁긍했다.
 
이 전도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정신여자중ㆍ고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교역자를 교장 선생님이 물색하고 있고, 지금까지는 목사님이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는데, 이제는 여성 교역자에게 성경교육을 맡기고 싶어자는 것이 교장 선생님의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성 교역자에게 성경교육을 맡긴다면 목사가 항상 성경을 가르쳐 오던 학교의 전통을 깨뜨려야 했다. 이때만 해도 내가 속한 장로교회 교단은 여성 교역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았다.
 
김필례 교장 선생님은 학교의 전통을 부분적으로 어겨서라도 여성 교역자를 교목실로 모시려는 굳은 의지를 갖고 계셨다. 그래서 김 교장 선생님은 장로회신학교 학장인 계일승박사에게 여성 졸업생 한 분을 추천해 달라고 의뢰했다. 그러자 선뜻 학장님이 "졸업생 이연옥"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 추천을 받아들인 김필례 교장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수소문한 끝에 이필숙 전도사를 통해 나에게 연락해 온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이필숙 전도사의 설명이었다.

 
이연옥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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