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례 선생님의 헌신과 모범

김필례 선생님의 헌신과 모범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30일(수) 18:27

교장 선생님은 각 반 담임 선생님께 등록금을 내지 못한 학생들의 명단을 파악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전교의 각 교실마다 미등록 학생들의 명단이 작성되어 교장실로 보고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보고된 학생들의 가정 형편을 낱낱이 파악하였고,그 학생들 중에서 장학금이 꼭 필요한 아이들을 선별하고 그들을 위해 영문으로 장학 추천서를 타이핑하셨다. 이렇게 학생들을 성실하게 사랑하는 김필례 선생님에게서 나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한번은 내가 중학교 1학년 학급 담임이었을 때 방과 후 청소당번들이 교실청소를 다했는지 점검하려고 교목실을 나와 복도로 걸어갔다. 그런데 어느 어른 한 분이 바닥에 엎드려 손수건 같은 천으로 무언가 열심히 문지르며 닦고 있었다.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어른은 바로 교장 선생님이셨다. 복도 시멘트 바닥에 잉크가 쏟아져 사방으로 튄 잉크 얼룩을 김필례 선생님이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계셨던 것이다. 알고 보니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잉크병을 들고 가다가 복도에 떨어뜨린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 학생을 꾸짖으며 혼내는 대신에 자신이 복도에 엎드려 잉크를 닦아 내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술에서 기도가 새어 나왔다. "하나님,학교를 저렇게 사랑하시는 교장 선생님처럼 저도 저런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직장을 허락해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김필례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과 몸에서 소화되어 몸 밖으로 내보내는 배설을 매우 중요하게 관리하셨다. 즉,마실 물관리와 화장실 관리가 교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매일 아침 전교생에게 학교에서 보리차를 제공했다. 그러려면 근무자들이 이른 아침까지 거의 밤샘으로 엄청난 양의 보리차를 끓여 놓아야 했다. 그리고 각 교실의 주번 학생은 등교한 직후 주전자를 가져와서 보리차를 배급받아가야 했다. 보리차 끓이기와 배급을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학교의 큰 행사였다.
 
아침 6시50분에 출근한 김필례 교장 선생님은 가장 먼저 보리차를 점검하셨다. 근무자들이 가마솥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서 보리차를 끓였는지 알아보려고 보리 알갱이 상태를 손으로 만져 확인하고 냄새까지 맡아보며 꼼꼼하게 살펴보셨다. 차 끓이는 직원들이 만에 하나라도 소홀히 다룬 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당장 그들을 혼내고 야단치셨다. 그렇게 세심하게 보리차 상태를 점검하는 까닭은 마실 물의 위생샅대가 학생들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양식으로 김필례 교장 선생님은 화장실을 점검하셨다. 또한 학교의 교정을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가꾸고자 하셨다. 시간 나는 대로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고 용인 직원들과 함게 부지런히 학교의 본관과 부속건물을 점검하고 살펴보셨다.
 
김필례 교장 선생님의 성실성은 채플시간에도 확인되었다. 중학교는 학년 별로 각각 예배를 드렸는데 꼭 같은 예배순서에 꼭 같은 설교가 세번 반복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세 번의 예배 가운데서 한 번만 적당히 골라서 참석하시면 되는데 꼬박꼬박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세 번의 예배시간에 모두 참석하셨다. 직원 조회시간에도 말씀을 무척 아끼셨다. 웬만한 일은 교감의 손에서 처리되도록 하셨고,꼭 필요한 경우에만 간결하고도 품위 있게 말씀하셨다. 김필례 교장 선생님의 이러한 리더십은 수 년 뒤 내가 이 학교의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교장업무에 모본이 되었다.
 
정신여자중ㆍ고등학교에서 4년 동안 근무한 다음 나는 오랫동안 꿈꿔 오던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동안에 명신홍목사님이 나에게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소개해 주셨고 추천서도 써 주셨다. 1961년에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나의 입학을 허락하면서 장학금도 지급하겠다고 알려주었는데,그 장학금으로 등록금이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숙사비는 나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전액 장학금이 아니었으므로 스스로 마련해야 할 학비 때문에 경제적 부담감이 있었으나 미국에 가면 어떻게 잘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근무하는 정신여자중학교에 미국 유학을 떠난다고 보고했다. 교장 선생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렸으며,동료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몇 차례 송별회를 열어 주셨고 학생들과 눈물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전체 교사회가 공식 송별회를 열어 주었다.


이연옥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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