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기숙사 생활

즐거웠던 기숙사 생활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6월 19일(화) 09:19

나는 기숙사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모두 나에게 친절했고 서툰 영어로 낯선 미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했다. 한국에서 나는 여교역자로서 희색 저고리에 검정색 통치마 한복생활이 몸에 익었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복 대신 거의 날마다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다. 무채색의 옷이 편했으므로 한 주일 내내 그것만 입고 다녔다. 미국 친구들은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내가 좀 안 돼 보였는지 하루는 동료 학생 대여섯이 옷을 한 보따리 싸들고 내 방으로 찾아왔다. 그들의 설명인즉, 날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내가 옷이 없어 그런 것 같아 학급 학생들이 내가 입을 옷을 모아 왔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미국 학생들이 날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나도 입을 옷 몇 벌을 가져왔는데, 아직은 기숙사에서 빨래하기가 좀 그렇고 또 가져간 옷이 모두 새 옷이어서 아껴 입을 요량도 있었다. 아무튼 간에 동료 미국 학생들의 관심과 우정을 듬뿍 받으면서 나의 유학생활은 순조로이 진척되었다.
 
기숙사에서 먹는 세끼 음식도 참 좋았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식단이었고 맛도 좋았다. 기숙사 식당 운영비의 삼분의 일을 장로교회 여전도회가 지원해 주었다. 그때 받은 감동을 잊을 수 없었던 나는 나중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이 된 다음에 한국 장로교회의 여전도회로 하여금 교단의 직영신학대학인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건축과 운영에 재정을 지원하도록 했다.
 
아무튼 나는 기숙사 식당 음식을 무척 좋아했는데 아쉽게도 주말에는 기숙사 식당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주말의 세끼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대다수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서 식당에서 사먹었다. 그들이 종종 나를 초대해서 우리는 함께 식사하러 나갔다. 성탄절에는 두 주간 동안 휴가이므로, 여러 친구들이 나를 자기네 집으로 초대했고 가끔은 총장님이 명절 선물로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학교에서는 매달 나에게 용돈 30달러를 지급했다. 알고 보니 이 용돈은 근로장학금이었다. 미국에서는 공짜가 없었다. 유니온 장로교신학교의 도서관에서 나는 매주 정해진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서 매월 30달러를 받았다. 주로 도서관에 들어오는 신간도서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30달러는 그 당시에 한 달 용돈으로 충분히 쓸수 있는 금액이었다.
 
유니온 장로교신학교와 기독교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이 나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이었다. 유니온 장로교신학교에 세 명(홍동군, 유철옥, 황문규), 기독교 교육대학원에 세 명이었다. 우리는 자주 주말에 우리끼리 모여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기숙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국제 부엌'이라 불리는 식당이 있었는데, 외국인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평소에 미국에서 먹지 못하는 고향의 고유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주말이면 그 부엌을 사용하고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날이 잦았다. 우리는 이 식당에서 주로 쌀밥에 찌개와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남학생 둘이 나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내가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고 그 남학생들에게는 채소 다듬고, 고기 장만하는 법을 코치해 가면서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식사와 함께 오르는 밥상머리 대화는 한국의 현실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땅에 살면서 한국 음식이 그리워 향수를 달래며 밥을 같이 해먹으면서 서로 기분 좋은 이야기를 나눌 법도 하건만 한국에서 진행되는 현실 정치를 대화의 메뉴로 삼아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목청을 높이며 다투기도 했다. 어쨌든 밥을 먹고 나면 홍 목사가 우겨서 나를 절대로 설거지 그릇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남학생들이 도맡아 했다.
 
한번은 내가 쇠고기 장조림을 만들었다.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유니온 장로교신학교의 세 남학생들이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해 부탁한 것이었다. "기숙사 음식이 느끼하므로 좀 짭짤한 장조림이 있으면 식사가 한층 수월해지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장조림을 만들어 준 것이다. 기꼬망이라는 일본간장에다 소금을 섞고 거기에 쇠고기를 넣어서 간이 푹 배어들기까지 끓인 다음 한참 동안 식히면 제법 맛있는 장조림이 된다. 그렇게 조리한 장조림을 아주 큼직한 커피 병에 담았다. 이제 다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학생들이 유니온 장로교신학교에서 한 블록 건너 있는 PSCE 기숙사로 왔다. 모두 다 기분 좋게 장조림을 받아갔다.

 
이연옥명예회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