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 가정예배 ] 2023년 5월 24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희준 목사
2023년 05월 24일(수) 00:10

김희준 목사

▶본문 : 마태복음 5장 7절

▶찬송 : 305장



예수님은 팔복 설교를 통해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긍휼은 '상대방의 피부 속으로 뚫고 들어가서 상대방의 아픔, 마음의 고통과 합해지는 것, 그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긍휼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그 사람의 고통뿐 아니라 오늘 그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나의 고통 때문에라도 무엇인가를 행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이 긍휼의 마음을 품는 것은, 그가 받은 은혜를 묵상하고, 감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는 긍휼을 '그레이스 인 액션(Grace In Action)'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받았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팔복의 시작점에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먼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 어떤 조건도 갖추어지지 않은 채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걸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의 삶을 사는, 철저한 가난의 사람이 바로 '우리'였다. 그런데 우리가 버젓이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다. 성경에 보면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는 구문이 등장한다. 그것이 사람의 실존이다. 그런데 그런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기다'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왕자'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벌레와 같은 야곱이 하나님의 왕자가 되는 신비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바울 사도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죄인 중의 괴수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돌감람나무와 같은 우리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주시지 않았던가? 이 긍휼과 은혜가 어찌 삭개오만을 위한 것이거나, 세리 마태만을 위한 것이었겠는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이 은혜의 수혜자인 것이다.

니느웨에 거하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 십이만여 명 중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다름 아닌 요나이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신 이름 중에 요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지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된다. 설교하는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긍휼을 입은 사람, 그 긍휼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내 주변의 바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고. 이것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입은 긍휼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만이 누군가를 긍휼히 여길 수 있다. 마치 친구 요나단의 호의를 경험했던 다윗이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긍휼히 여길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를 경험하길 원한다면, 내가 받은 은혜와 긍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그레이스 인 액션(Grace In Action)'을 보여주자.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있는 긍휼을 기뻐하시고, 또 다른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은혜에 감동하고, 긍휼을 기억함으로, 내 안에서 일하시는 주의 긍휼로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희준 목사 / 묵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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