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예배 ] 2024년 9월 20일 드리는 가정예배
임근묵 목사
2024년 09월 20일(금)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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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룻기 1장 15~18절
▶찬송: 189장
나오미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나설 때 그녀를 따라나선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오르바와 룻이다. 이 세 여인은 이제 막 보리 추수가 시작된 5월의 모압 들길을 벗어나 황량한 광야를 말 없이 걸어가고 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 각자의 머릿속은 복잡했을 것이다. 처절한 마음의 나오미의 눈앞에 요단강이 나타났을 때 그녀는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자신을 말 없이 따라온 두 명의 불쌍한 과부 며느리가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고 축복한다. 한 번의 거절 끝에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돌아서지만, 첫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른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장면은 룻기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미스터리 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 모습이 없다면 룻기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올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는 룻이 왜 시어머니를 따라온다고 한 것일까? 그것도 다시는 거절하지 못할 만큼 단호하고 확고하게 말이다. 땅도, 사람도, 언어도, 종교도 다르고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 화식 편에는 '천하 사람들이 즐겁게 혹은 어지럽게 오고 가는 것은 모두 자기 이익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룻은 자기에게 전혀 이익이 없는 길을 택한 것이다. 왜일까?
우리는 이런 장면을 성경에서 또 발견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쳐 죽이고 사울 앞에 섰을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다. 그는 자기 목숨을 걸고 다윗을 피신시키고 자신의 왕위조차 포기하고 다윗을 사랑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이유를 룻에게서, 요나단에게서 찾으려 한다면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룻에게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나오미에게 있다.
룻의 뜻은 '친구'이다. 나오미가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듣고 돌이키자 하나님은 그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신다. 바로 친구 같은 며느리 룻이다. 룻은 나오미의 영원한 동반자요 친구이고 위로자이다. 룻을 통하여 나오미는 전혀 다른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룻이 없었더라면 나오미의 말대로 그녀의 인생은 '마라(쓴 물)'로 끝나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하고 그분에게로 돌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신다. 동반자요, 위로자인 성령님이다. 우리가 성령님 없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령님의 능력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구약의 성도들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따르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설교했던 것처럼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님은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물이다. 자신 스스로 살던 길을 버리고 주께로 돌이키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요 동반자요 선물이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우리의 길을 돌이켜 주께로 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 성령님을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우리가 복 된 삶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근묵 목사/홍익교회
▶찬송: 189장
나오미가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나설 때 그녀를 따라나선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오르바와 룻이다. 이 세 여인은 이제 막 보리 추수가 시작된 5월의 모압 들길을 벗어나 황량한 광야를 말 없이 걸어가고 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 각자의 머릿속은 복잡했을 것이다. 처절한 마음의 나오미의 눈앞에 요단강이 나타났을 때 그녀는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자신을 말 없이 따라온 두 명의 불쌍한 과부 며느리가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고 축복한다. 한 번의 거절 끝에 둘째 며느리 오르바는 돌아서지만, 첫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른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장면은 룻기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미스터리 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 모습이 없다면 룻기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올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는 룻이 왜 시어머니를 따라온다고 한 것일까? 그것도 다시는 거절하지 못할 만큼 단호하고 확고하게 말이다. 땅도, 사람도, 언어도, 종교도 다르고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 화식 편에는 '천하 사람들이 즐겁게 혹은 어지럽게 오고 가는 것은 모두 자기 이익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룻은 자기에게 전혀 이익이 없는 길을 택한 것이다. 왜일까?
우리는 이런 장면을 성경에서 또 발견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쳐 죽이고 사울 앞에 섰을 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다. 그는 자기 목숨을 걸고 다윗을 피신시키고 자신의 왕위조차 포기하고 다윗을 사랑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이유를 룻에게서, 요나단에게서 찾으려 한다면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룻에게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나오미에게 있다.
룻의 뜻은 '친구'이다. 나오미가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듣고 돌이키자 하나님은 그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신다. 바로 친구 같은 며느리 룻이다. 룻은 나오미의 영원한 동반자요 친구이고 위로자이다. 룻을 통하여 나오미는 전혀 다른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룻이 없었더라면 나오미의 말대로 그녀의 인생은 '마라(쓴 물)'로 끝나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하고 그분에게로 돌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신다. 동반자요, 위로자인 성령님이다. 우리가 성령님 없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령님의 능력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구약의 성도들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따르는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설교했던 것처럼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님은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물이다. 자신 스스로 살던 길을 버리고 주께로 돌이키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친구요 동반자요 선물이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우리의 길을 돌이켜 주께로 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 성령님을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우리가 복 된 삶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근묵 목사/홍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