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갈구하는 이들의 절규

구원을 갈구하는 이들의 절규

[ 주간논단 ] 북한사람이해하기(1)

김경숙 박사
2023년 04월 11일(화) 10:11
오늘날 한국교회는 복음 통일을 위해, 통일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전심으로 통일 사역에 힘쓰고 있다. 복음 통일, 통일 선교의 대상이 북한사람이라면 북한사람의 마음 혹은 정신세계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첫째가는 선교적 과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사람은 삼부자를 존경하고 숭배하는 사람들일까?" "북한선교는 주체사상에 세뇌된 북한사람을 개종하는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내면화한 '충효일심의 북한사람' 표상에 대해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북한사람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통상 우리가 한 국가 국민의 마음 체계 혹은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접근하는 방법은 그 나라의 문헌자료,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문학예술 작품 그리고 인류학적 접근법을 통한 참여관찰과 상호작용 등을 통해서다. 미디어 역시 가장 일반적으로 북한사람을 이해하는 매개체로 미디어에서 방영되는 시선은 여과 없이 수용된다.

이와 같은 방법론은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분석할 때 가능한 접근법으로 서구 중심적인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권위주의 독재국가일지라도 최소한도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그런대로 가능한 접근법이다. 예컨대 이란과 이라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독재정권의 압제에 내몰리지만 최소한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며 외부 세계와 실시간 교통할 수 있다. 자신이 몸담은 사회적 현실에 저항할 것인가, 체념할 것인가, 떠날 것인가 등을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반정부 시위, 인권침해 실태가 실시간 외부 세계와 공유되며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다.

우리가 '선택'이 가능한 사회정치 환경을 표본으로 하는 서구 중심의 방법론으로 눈에 보이는 대로, 북한당국이 보여주는 대로 북한사람을 이해한다면 심각한 인지적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북한은 '선택'이라는 개념이 실종된 사회다. 북한의 사회정치환경은 마치 아이가 학대하는 의붓아버지의 손에 잡혀 방안에 갇힌 채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한번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 폭력적인 아버지의 손에 잡혀 방안에 갇혀 학대받는 아이가 진정으로 아버지를 존경하고 숭상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열광하고 따르는 아이의 모습은 생존을 위한 계산된 충성심이 아닐까?

폭력적인 환경에서 아이는 살기 위해 완전히 굴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빠가 '하라고 시키는 것'만을 해야 한다. 아이는 살기 위해 아버지에게 매달리며 연극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공포에 제압당해 파리하게 시든 아이가 활짝 웃으며 '우리는 행복해요' '세상에 부럼 없어요'라며 팡팡 뛰며 노래 부른다. 외부 세계는 북한이 비춰주는 행복한 아이의 모습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북한사람의 '거짓 표상'을 내면화하게 된다. 아버지에게 매달리도록 강요받는 아이의 생존 지향적인 반응과 행동을 '삼부자에 대한 숭배와 충성심'의 발현으로 오판하게 된다. 이렇듯 외부 세계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북한이 보여주는 것을 여과 없이 보이는 그대로 믿는다. 삼부자에게 열광하는 인민의 얼굴을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만들어낸 절대권력의 열정적이고 치밀한 통치전략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한국교회는 복음 통일을 위한 여정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곧, 하나 됨을 이뤄야 하는 북한사람들에 대해 '과연 그들의 겉모습을 보고 삼부자와 일심동체 된 충효의 사람, 정권의 협력자로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체제의 선동선전전략에 의해 표상화된 '충효일심의 북한사람'이 아닌, 북한이 보여주지 않는 북한사람의 삶, 즉 '낮에는 사회주의, 밤에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그들의 이중적인 삶의 실체, 심층적인 정신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지워지고 왜곡되었던 북한사람의 실체를 바로 이해할 때, 한국교회는 완벽하게 가려지고 무시되었던 그들의 인권침해 실상을 훨씬 더 깊숙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두움 가운데서 애타게 구원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실종되었던 절규를 훨씬 더 아프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경숙 박사/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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