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삶

용서하는 삶

[ 가정예배 ] 2023년 4월 21일 드리는 가정예배

권성현 목사
2023년 04월 21일(금) 00:10

권성현 목사

▶본문 : 마태복음 18장 21~35절

▶찬송 : 266장



베드로는 예수님께 형제의 죄를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냐고 질문했다(21절). 베드로는 큰맘 먹고 일곱 번을 불렀을 것인데, 예수님은 그것을 아득히 넘어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셨다(22절).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했을 때, 일곱 번을 용서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두 번도 아니고 반복해서 잘못을 저지르는데, 그것을 일곱 차례나 용서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니, 예수님의 대답은 사실상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까지 용서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을까?

첫째,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그렇기에 모두 죽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음이 확정된 죄인인 우리를 위해 당신의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자기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을 빌린 사람을 만나 돈을 갚으라 하면서 감옥에 집어넣으니 이 주인이 이 사람을 괘씸하게 여겨 잡아 가두고 일만 달란트를 다 갚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일만 달란트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갚을 수 없는 큰돈이었지만, 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100일을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마어마한 죗값을 탕감받은 사람들이기에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의 값에 비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범하는 잘못의 크기는 정말 미약하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가 용서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으로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이 비유에 나오는 주인처럼 하신다고 하셨다(35절). 곧, 우리가 하나님께 분명 큰 용서를 받았지만, 가족을,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 죄를 들춰내시고,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는 살지 못하겠는 복수심이 우리 안에 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해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까지 말씀하셨다(눅6:27~28).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나를 용서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또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지금도 조롱하고 있는 무리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용서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용서하는 삶이다.



오늘의기도

하나님께서 한없는 은혜로 저희를 용서하신 것처럼 저희도 가족을, 친척을, 이웃을 용서하는 그런 사람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성현 목사/온누리평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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