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따라 열매 맺는 사람

철을 따라 열매 맺는 사람

[ Y칼럼 ] 기형도 청년 ③

기형도 청년
2023년 04월 12일(수) 16:24
3~4월은 본격적으로 꽃이 만발하는 달이다.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 꽃눈이 자라고, 작은 잎사귀가 꼬물꼬물 돋아난다. 생명의 흔적이라곤 없던 그 딱딱한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연한 꽃잎과 잎사귀는 매번 신기하다. 즐겁게 달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듯, 나무도 자신의 생기를 참을 수 없어 푸르러진다. 이렇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꽃이 활짝 핀다. 봄에 피는 목련은 가장 아름답고, 벚꽃은 눈송이처럼 흐드러지게 핀다. 아카시아도 질세라 향기로도 봄을 느끼게 한다.

나무는 이렇게 철을 따라 산다. 철은 순우리말로 계절의 변화를 뜻한다. 그 변화를 따라 맞게 살아가는 것을 '철이 든다, 철에 맞게 산다'고 말한다. 반대말로 철부지(不知)란 말이 있다. 농사를 짓는 선조들은 24절기를 모르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땅을 갈아엎어야 할지, 씨를 심어야 할지, 물을 대줘야 할지, 땅을 쉬게 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표가 24절기였다. 그래서 철부지(不知)는 계절의 변화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지혜롭지 못한 사람, 아직 때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예전엔 농사를 기준으로 24절기를 알아야 철을 안다고 했다면, 크리스찬은 자고로 말씀을 알아야 철이 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나는 아직도 철부지다. 아니, 가끔은 일부러 철부지가 되기도 한다.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이렇게 쓰는 것이 많이 부끄럽다.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철부지가 맞긴 맞나 보다.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나무에 비유한다. 이 사람은 절기를 알고 농사를 짓는 사람처럼 율법을 알고,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사람이다. 형통하다는 것은 황금 열매를 맺거나, 영원히 썩지 않는 잎사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철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편 1장이 묘사하는 것은 특별한 날들의 연속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다. 하지만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잎사귀를 내고, 열매를 맺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그 단단한 껍질 사이로 잎과 열매가 나오는 것이 오히려 기적처럼 느껴진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에겐 자연스럽지만 사실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이제 철부지는 그만두고 철을 알기로 결심해본다. 시편의 나무처럼 나의 일상에도 아주 자연스러운 기적이 있으면 좋겠다. 소중한 일상 속에 말씀과 함께하며 단단한 나의 마음 사이로 연한 순이 자라나길 바란다. 나와 같은 철부지가 있다면 오늘은 특별히 말씀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말씀 위에 단단한 뿌리를 두고 철을 따라 사는 나무가 되길 함께 도전한다.

기형도 청년 / 계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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