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운명

이성의 운명

[ 인문학산책 ] 70

최신한 명예교수
2022년 08월 31일(수) 10:55
임마누엘 칸트
오늘날을 이성의 시대라 규정해도 무방하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성의 최대 성과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도 별다른 의심 없이 과학을 신뢰하는 것 같다. 과학을 더 신뢰하는지, 교회의 가르침을 더 신뢰하는지 자문해 본다면 본인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 대한 신뢰 또는 이성에 대한 신뢰는 그 자체로 온당한가?

인간의 이성은 특별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성은 그 본성에 따라 물음을 던지나 이성 스스로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칸트(I. Kant, 1724~1804)는 '순수이성비판'의 첫 번째 문장에서 이성의 운명과 모순에 대해 언급한다. 이성은 본성적 능력에 따라 묻지만 이에 답할 수 없는 물음이 있다. 이성 능력이 없는 동물은 아예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없다. 동물을 능가하는 인간임에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신과 동물 사이에 끼어있는 인간의 운명이다.

이성이 묻고 대답하는 세계는 알 수 있는 세계인 반면, 대답할 수 없는 세계는 가상(假像)의 세계이다. 알 수 있는 세계는 그 참모습을 밝힐 수 있는 세계라면 가상의 세계는 어렴풋이 생각만 할 수 있는 세계다. 이성이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은 물리학자나 신학자 같은 특별한 사람만 제기하는 물음이 아니라 누구나 던지는 익숙한 물음이다. 육체의 죽음 후에도 영혼은 불멸하는가? 세계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끝은 어디인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칸트는 이성의 물음에 따라 세계를 알 수 있는 세계와 알 수 없는 세계로 구별한다. 알 수 있는 세계는 이성의 물음에 이성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이다. 이에 반해 알 수 없는 세계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나 상상하고 추리할 수 있는 세계이다. 세계는 과학적 세계와 과학 너머의 세계, 유한한 세계와 무한한 세계, 지식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로 나누어진다.

양분(兩分)된 세계는 칸트의 고백에서 확인된다. '신앙에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식을 지양해야 했다.' 이 말은 앎의 세계를 확대하는 노력을 더 할 수 있음에도 신앙을 위해 그 활동을 중단한다는 뉘앙스를 남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교와 신앙 영역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표명이다. 이성의 운명은 인간의 지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를 한계 너머로 이끌어간다. 인간은 앎의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이 한계 너머의 세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식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실천이다.

이성의 실천은 무한한 세계를 토대로 한 실천이며 무한한 세계를 향한 실천이다. 칸트는 실천이성을 선(善)의지 또는 양심으로 부른다. 실천이성은 선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 비록 무한한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무한한 세계를 향한 행동을 해야 한다. 이것은 도덕적 행동이며 양심의 실천이다. 사랑의 실천과 같은 도덕적 행동은 개인이 수행하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 보편적이다. 도덕적 실천은 보충해야 할 것이 더는 없다는 점에서 최고선의 실천이다.

도덕은 신의 영역에 속하므로 도덕론은 곧 종교이론이며 도덕 신학이다. 도덕은 십계명과 같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는 명령과 유사하나 인간이 자신에게 내리는 정언(定言)명령이다. 네가 따르는 행위의 기준이 곧 도덕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 이러한 이성의 명령은 보편적이므로 이를 수행하면 곧 보편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된다. 칸트에게 도덕적 실천은 종교적 믿음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이성의 운명은 양자택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성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세계에만 관심을 가지면 검증된 지식만 추구하는 협소한 삶이 될 것이다. 이성의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세계에만 집중한다면 과학의 성과를 무시하고 도덕만 요구하는 비현실적 삶이 될 것이다. 이성의 모순은 오히려 양자의 긴장을 요구한다. 두 세계의 긴장은 지식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과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교차로 나타난다.

오늘날이 이성의 시대라 하더라도 이성과 과학만을 신뢰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성에 대한 신뢰가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연결되면 인류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성을 무제한으로 사용한 결과이다. 이성의 능력을 극대화한 강한 인공지능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노예로 삼을 수 있다. 이성의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자각은 이성의 성과를 성찰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성의 성과에 대한 성찰은 이성 너머의 세계를 향한 경외로 이어진다. 이 경외는 우주 및 생명의 원천에 대한 경외이자 앎이 미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다. 이 믿음이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선도할 규범을 제시한다면 이것은 인류의 희망이다.

최신한 명예교수 / 한남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