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상징

문화와 상징

[ 인문학산책 ] 59

임채광 교수
2022년 06월 02일(목) 09:00
문화와 상징

인간과 동물의 차이 중 하나는 상징적 수단의 활용 여부에 있다. 동물의 경우, 자연과 직접적 관계를 통해 생존하는 반면에 인간은 제3의 매개물을 통해 자연과 관계한다. 상징은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주며, 그의 삶 자체를 변형시킬 힘이 있다. 인간은 상징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가치를 습득하고 만들어간다.

언어와 신화, 예술과 종교가 상징들의 묶음이다. 인간은 단지 자연계에 존립하는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상징적 우주에 거주한다. 상징화된 개념과 의미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유기체이며, 그 속에서 자기의 의미를 찾고 존립하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시러(Ernst Alfred Cassirer, 1874~1945)는 인간을 "상징의 동물(animal symbolicum)", 즉 "상징을 생성하고 이해하는 존재"라고 불렀다.

인간의 삶에서 상징은 세 가지 기능을 한다. '표현'과 '묘사', '의미' 기능이다. 카시러는 '표현기능'의 기원을 육체와 정신의 화해, 물질적 현상과 초월적 세계를 향한 추구 사이의 합치를 위한 꿈, 즉 일종의 환상에서 유래한다고 보았다. 육체와 정신의 결합은 하나의 상징적 관계이며, 모든 다른 물질적 또는 인과적 관계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표현체험은 현존하는 사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표현 및 재구성을 목표로 한다. 지식 이전에 기능하는 일종의 '근원 현상'이다.

'묘사기능'은 표현기능 보다 좀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의도적 행위를 말하는데, 가령 대상을 기호화하여 지시기능을 구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 된다. 유추적 서술이나 모방적 표현과 같이 발생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언어적 행위의 기초적 발상이 이와 같은 묘사기능과 직결되어 있다. 카시러는 이와 같은 언어의 묘사기능이 주관적 의지의 표현 차원을 넘어 객관적 대상 세계의 구조를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어의 객관성 및 사회성의 토대는 묘사기능을 통한 상징화인 것이다.

상징의 세 번째 영역에 해당되는 '의미기능'은 지식과 논리적 인식의 영역이다. 법칙과 가치, 합리성, 규범의 체계들도 그 역할에 있어서 의미 기능들이다. 인류사의 오랜 전통의 한 축이 되었던 신화나 사상, 법과 예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과 기술의 논리와 가치 역시 상징적 의미를 그 배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카시러는 그의 대표 저서인 '상징형식의 철학'에서 "우리의 감각적 활동과 그 의미들이 충족되어지는 현장에서 자명한 것들로 받아들여지는 상징화된 개념들이 현존(Dasein)하며, 어떻게 그와 같은 모습(Sosein)을 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각각 개인의 감각 세계 안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 모습으로 표출되며 구현되는지 그 총체적 구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칸트가 우리의 세계를 바로 이해하는데 선험적 이성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각적 체험이 가능한 절대 범주 안에서 체득한 자료를 토대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과 같이, 카시러 역시 시간과 공간의 전제와 이해 주체의 관계가 중시된다.

사물들에 대한 경험은 나와 관계하는 대화의 대상이 되고, 의미와 가치의 교환에 의존하지 않고는 그 무엇도 볼 수 없으며, 그 무엇도 깨닫지 못한다. 언어의 구조, 예술적 상상력, 종교예식이나 문화적 상징들이 그와 같다. 이 외에도 기술과 과학, 역사, 관습, 법률 등 그 배후에 기능하는 상징형식에 대한 탐구가 철학이 추구하는 과제이다.

카시러는 문화 현상을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상징적 함축'과 '상징형식'이다. '상징적 함축'이란 언어의 사용 또는 행동 과정에 의미나 기호를 활용한 표현 및 소통행위 자체를 말한다. '상징형식'은 대개가 복합적인 상징들과 문화적 체계들의 묶음 또는 구조형태를 지칭한다.

언어로, 종교로, 기술적 수단으로 또는 역사와 학문의 체계 안에 상징들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문화 속에 살아가는 한 상징들의 숲 안에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행위는 의미와 가치의 표현이자 감각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인간의 삶 자체는 상징 활동이자 상징 자체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 내밀한 체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문화 이해의 선결과제이다. 어떠한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경험과 생활세계의 배후에 어떠한 문화적 전이해가 존재하고, 이미 각인된 사실과 내용들의 상징적 원리들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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