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상징이다

언어는 상징이다

[ 인문학산책 ] 57

임채광 교수
2022년 05월 18일(수) 06:08
에른스트 카시러의 '상징형식의 철학' 제1권 독일어판 겉표지.
말과 글은 우리가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행동방식이자 도구이다. 사람 사이에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도, 평화와 사랑의 전령사가 되기도 한다. 언어의 인간학적 지위에 대해선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주목하였다. 특히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의 존재론에서 언어는 정신의 외연이자 존재형식으로 간주된다.

하르트만은 정신을 "개인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 "객관화한 정신"으로 구분하고, 언어는 각각의 정신 활동 과정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즉 정신은 '말함', '말 그 자체', '말해진 말'과 같은 언어적 활동으로 표출된다. 언어는 표현의 깊이와 정교함의 수준에 따라 단계별로 분류된다. 게엘렌(Arnold Gehlen)은 언어를 수준별 발달 단계에 따라 다섯가지 유형으로 설명한다.

가장 초보적 단계는 "음성" 자체의 단계이다. 아이의 울음과 같이 세계를 대상화하거나 충동의 표출과정에 아직 의식이나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뱉는 행위이며 신체적 에너지와 구조에서 유래하는 동물적 소리이다.

좀 더 발전된 언어 수준에 이르면 "시각인상에 따른 음성표현"이 가능해진다. 시각적으로 감지한 대상에 대하여 소리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옹아리와 같이 극히 초보적인 말하기 국면이다.

언어 사용의 세 번째 단계는 단순한 수준의 의미전달 방식이다. 즉 고통이나 쾌감으로 인해 소리 지르는 것과 같이 주위를 환기시키는 행동이 이에 해당한다. 이 때 화자가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표현에 상응하는 욕구충족이다.

네 번째는 "음성의 재인식" 단계이다. 개인이 음성 표현을 할 때 어떠한 다양한 가치들이 집중되고 이 중에 가치 우위를 점유하는 대상을 선택하여 반복적으로 대응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이 때 경험에서 유래하는 인상들과 그 결과의 상관구조를 재 기억함으로서 자신의 행위에 기계적 특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건을 의사소통이라 부른다.

언어의 품격은 화자들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음성을 매개로 설명해 낼 수 있고, 의사소통을 구성하는 매개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는 '음성암시' 즉, 상징화된 의미의 기능이다. 언어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능이 여기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어떠한 '단어'에는 일정한 '상황가치'가 전제되어 있고, 언어는 어떠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이자 수단이 되기도 한다.

두 사상가는 언어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지만 하르트만에게 언어는 정신의 외연이고 존재방식이라면, 게엘렌이 본 언어적 상징은 충동의 표출로 보았다. 결핍존재인 인간이 욕망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넓은 의미의 기예이고 삶의 방책이다. 이들과 같이 언어를 상징체계로 간주하면서도 그 지위를 달리 보았던 카시러는 언어가 사유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카시러(Ernst Cassirer)는 '상징형식의 철학'에서 언어적 상징들은 근본적으로 내적 형식을 갖고 있으며, 나와 세계, 주체와 객체의 중재자로서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갖는다고 보았다. 하르트만이나 게엘렌과 달리 그는 언어를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언어는 생각과 관념의 매개물이라고 이해한다.

언어적 상징들의 학습을 통해 언어적 표현들은 더욱 넓어지고 심화 된다. 인간의 관념과 의지의 표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의식을 구성하도록 하는 절대적 요소이다. 이 때 인간은 '언어와 그 형식'을 통해 시간과 공간, 숫자와 자아와 같은 관념구조들이 해명되어지고 개념을 파악하게 되기에 비로소 세계에 진입하는 방법을 취득한다.

카시러는 의식 철학이 취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입장으로부터 벗어나 언어 기호에 대한 방법론을 처음 시도했던 철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 이와 같은 그의 언어관은 언어에 대한 분석뿐만이니라 과학과 기술, 종교와 신화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문화이론의 주춧돌 역할을 한다. 언어는 다양한 표현 양식과 상징들의 총체이다.

언어는 생존에 필수적 도구이고 상징화된 수단이다. 의미와 가치의 외연이기도 하다. 동시에 언어는 생각을 만들고, 마음은 언어적 상징으로 작동한다. 언어적 표현과 소통 구조 밖에서 존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언어를 인간 "존재의 집"이라 명명하였다. 존재의 방법이고 생존방식이 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더 나은 가치를 위해, 그리고 지식과 논리, 심지어 영원한 삶의 소망과 충동까지도 상징화된 언어 안에서 비로소 생기를 얻게 된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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