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우리의 두려움과 대응방안

팬데믹 시대, 우리의 두려움과 대응방안

[ 인문학산책 ] 49

임채광 교수
2022년 03월 16일(수) 16:24
(사진출처: Pixabay)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 3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의 전 세계적 위기상황을 '팬데믹'이라 부르며 경고한 바 있다. 2022년 초 현재에는 4억 5000여 명의 확진자와 세계적으로 600만명 넘는 사망자를 낳았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 50만명의 2배에 이르는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만큼 두렵고 심각한 사회적 현실이 되었다. 사스와 메르스, 코로나19를 경험했듯이,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와 같은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2년은 지구인들에게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야외생활은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었고, 학교 수업은 비접촉과 비대면 방식으로 대체하였으며 사적 생활영역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포기하게 되었다. 특히 경제활동의 제한으로 자영업 사업장들의 줄도산이 이어졌으며, 해외 체류자나 유학생들이 그들의 삶의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히 나타났다. 이와 같은 현상의 중심에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세상과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우리가 느끼는 공통된 정서는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한 현실'이다. 어두운 밤길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인 것과 같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오늘과 내일이다. 불확실한 미래, 불명확한 현실에 직면하여 개인은 불안과 공포스러움의 망각을 위해 돈과 권력,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자연과학적 정보들과 같이 허상과 왜곡된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안위함을 얻고자 시도한다.

팬데믹과는 결이 다른, 그렇지만 20세기 인류가 맞은 가장 긴박한 위기상황이었던 제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독일의 사상가 하이데거는 인간의 일상은 비본질적 현상 안에 갖혀 있다고 전제하고, 왜곡되고 무감각해진 현실의 가면이 벗겨지는 체험은 두려움과 공포라는 계기를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불안과 공포는 삶의 근본적 느낌이다." 인간의 깊숙한 심리적 정서에는 죽음의 공포가 놓여 있는데, 이와 같은 실존적 체험 앞에서 자신의 현존재, 즉 실존을 받아들이고 "죽음이라는 불안과 삶의 사소함"을 각성할 때 자유해 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순간 여태껏 익숙해 있었던 거짓과 위선, 망상의 현실은 공포 앞에서 그 "베일을 벗는다." 사람의 말과 태도, 살아가는 모든 방편들은 그와 같은 실존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방편으로 기여할 때 유의미하다.

철학은 본래 위기의 학문이기도 하다. 철학이 또는 인문학이 추구해 온 가장 중요한 책무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적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었고, 그 역할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팬데믹 시대을 맞아 두려움과 공포를 벗어버리지 못한 채 일상에 임하는 우리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몇 가지 관점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하이데거의 주장과 같이 우리가 직면한 '공포'와 '두려움'의 심경은 회피나 망각의 대상이 아닌 '수용'과 '동행'의 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회피와 망각을 선택한 자는 과도한 대체재에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동시에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 척 외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용과 동행을 선택한다면, 그 요인이 사회 구조적이던 개인적 요인에서 유래했던 그 안에 직접 들어가 공감하며 그들과 함께 치유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의지를 보유하게 된다.

둘째, '연대함의 가치'를 깨닫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팬데믹으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나 또는 우리만 잘 지낸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한 각성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이 중시되었듯이 전 세계는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 정치적 의미를 넘어 학술적 융복합 시대를 절감한 계기도 되었다. 19세기에 유럽은 이미 학문 영역에서 융복합 연구 열풍이 불었다. 우리도 대략 20여년 전부터 학제간 통합연구를 위한 관심과 노력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최근 그 필요성이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분자생물학이 의학과 만나는 것을 넘어 반도체기술과 접목되고, 정치나 사회영역의 저널에 알고리즘을 접목한 소비자와의 접촉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다양한 학문의 협업과 같이 사회와 국가 간 연대의 중요성 또한 중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위기의 시대를 맞아 우리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되었다. 삶 자체가 시대적 환란기였던 유대인 철학자 훗설은 1936년 당시 유럽사회 및 철학의 위기를 목도하면서 미완성의 집필로 남겨놓았던 '유럽학문의 위기와 초월적 현상학'에서, 위기의 핵심원인을 전통적 지식이나 학술이론의 경직된 사고가 시대적 상황에 유연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과학과 기술의 맹목적 수용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나와 다르고 낯선 대상과의 소통과 공감,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근심과 두려움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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