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가 모호한 일군(一群)의 기독교 여성?'

'정체가 모호한 일군(一群)의 기독교 여성?'

[ 선교여성과 교회 ]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전도부인 ①

김은정 박사
2022년 02월 16일(수) 11:23
지난 2월 8일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선교여성의 날 예배에서 한국교회와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여전도회원. / 한국기독공보 DB
여전도회전국연합회 계속교육원 제70기 동계 단기교육에서 진행한 김은정 박사의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전도부인' 강의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전도부인은 누구였는가? 19세기 말에 출현해서 20세기 후반에 사라진 전도부인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성서를 비롯한 기독교문서를 판매하는 매서인으로서 전도부인도 있었고, 병원이나 학교와 같은 선교기관에서 기독교를 전하는 여성을 전도부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지역교회에서 일하는 전도부인도 있었다.

전도부인은 19~20세기 영미를 중심으로 한 해외여성선교에서 여선교사와 협력한 현지 여성 지도자로서 바이블 우먼(Bible woman)이라는 명칭이 한국 상황에서 번역된 호칭이다. 동양선교회로 한국에 도입된 성결교가 교파의 원년인 1907년부터 이 호칭을 사용했고, 감리교에서는 1930년대에 교단 차원의 정식 직제로 인정했으나, 일반적으로는 교회 안팎에서 기독교 포교 사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일컫는 호칭이었다.

문헌상 처음 나타나는 곳은 1904년 경기도 양평에 사는 지규식이라는 도공의 일기로, 그는 서양여선교사를 전도부인(傳道夫人)이라 불렀다. 근대 신문에도 전도부인, 선교부인은 여선교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다가 점차 서양선교사와 함께 일하는 한국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1920년대~1930년대에는 대중매체에 전도부인(傳道婦人)에 관한 기사가 등장하고 심심찮게 전도부인의 일화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양선교사가 내한해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1880년대 중반부터 1910년대까지 전도부인은 역할이 유동적이며 이름도 모호한 일군(一群)의 기독교 여성이었다.

그렇다면 정체가 모호한 일군의 기독교 여성으로서 전도부인을 어떻게 접근해서 파악하는 것이 좋을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전도부인은 여선교사와 한국 여성의 문화적 접촉과 교류로 인해 형성된 '중간 지대'에서 활동했다.

전도부인에 관한 정보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하는 자료는 여선교사들의 보고서와 잡지 기고문, 회고록 등이다. 물론 이러한 선교 보고와 기고문, 회고록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여선교사는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과 인물을 관찰하고 기록했고, 오리엔탈리즘의 흔적과 자신의 성과를 돋보이게 하려는 시도도 보인다. 전도부인의 이름도 명확하게 기록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여선교사들은 한국 여성과 공통점을 더 많이 의식하면서 여성이 겪는 보편적인 고통과 어려움에 연민과 공감을 가지게 되고 자매애를 형성했다. 이렇게 해서 조정된 선교사의 정체성은 서양우월적 관점을 보정해주기도 했다.

한국 문화를 서양에 소개할 때 상당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를 가지고 기존의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한 것도 선교사들이었다. 전도부인에 관한 한국 자료도 없지 않다. 동시대를 살았던 지식인 남성들이나 전도부인의 후손이 회고하는 글이 있는데 선교사 자료와 교차 대조해서 서로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전도부인이 직접 쓴 글도 적지만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감리교의 전설적 전도부인들이 남긴 증언은 노블 부인이 기획하고 편집하여 발행한 '승리의 생활'(1927)에 실려 있으며, 여러 연구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이 증언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김은정 박사 /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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