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화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언어문화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 인문학산책 ] 47

김선욱 교수
2022년 02월 09일(수) 17:42
헤로도토스
말이 생각을 규정한다. 우리는 어떤 단어를 배울 때 그 단어가 비로소 적절한 의미를 갖게 되는 구문과 함께 배운다. 특정한 상황에 맞게 구문을 쓰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기존 사회의 가치와 질서도 함께 배운다. 그래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태어날 때 우리는 이미 특정한 언어 공동체에 속해 있다. 나는 한국어의 세계, 더 구체적으로는 경상도 언어의 세계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어린 시절 전라도 언어권으로 이주하였고 더 커서는 서울 언어권으로 이동하여 언어권의 차이가 주는 문화적 환경 변화를 강하게 경험했다. 지금 내 말은 서울말처럼 되었지만, 아직도 어떤 이는 내 말에서 경상도 어투를 발견한다. 더 놀라운 것은, 경상도 식의 문화와 습관을 아직도 나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다.

왕국에서 태어나 왕에게 복종하도록 교육받은 자와 민주주의 세계에서 태어나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교육받은 자는, 정치에 대해 서로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왕권 국가에서 주권이란 단어는 오직 왕에게만 사용되었다. 왕국에서 주인의 권리는 왕만이 갖는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곳은 '왕국'이 아니라 '민국'이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된 이후로 이 땅에서도 국민이 주권을 가지게 되었다.

왕국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언어에는 왕국의 정치 언어가 여전히 살아 있다. 영어의 ruling을 '지배'로, ruler를 '지배자'로 번역할 때 우리는 왕국의 언어에 갇혀 있다. ruler를 '법에 따라 정부를 이끌어가는 자'라는 민국의 의미로 정확히 옮기는 우리말 번역어는 없다. ruled는 '피지배자'라는 의미인데, 이 말로 시민을 가리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통치'로 번역되는 governing도 마찬가지이다. governing의 주체는 governor인데 이 말은 '총독'으로 번역되고, 미국의 주의 경우 '주지사'로 번역된다. 총독과 주지사는 영어로는 같은 단어이나 그 뉘앙스는 아주 다르다. 전자는 왕국, 후자는 민국의 의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governing의 주체는 대통령인데, 그를 통치자로 표현하는 것도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왕국의 통치자와 민국의 지도자라는 의미 차이 때문이다. 이런 정치 관련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우리의 정치에 큰 영향을 준다. 왕국의 의식을 가진 이에게 대통령 부인은 '국모'가 된다.

이런 현상이 교회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는 '왕국' 백성이다. 우리는 '왕' 되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바울처럼 주님의 '종'으로 살기를 원한다. 나의 신앙에 있어 이런 표현은 당연하다. 다만 이런 언어에 익숙한 신앙인의 의식이 세속 정치에서 요구되는 민주시민 의식과 조화를 잘 이룰 수 있는가가 문제다. 자칫하면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신학자나 목회자에게는 한쪽의 언어를 다른 쪽 언어로 잘 번역해야 할 책무가 있다.

정치적 평등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3권에 나온다. 여기서 BC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초기 역사가 다루어진다. 페르시아의 왕 캄뷔세스를 속이고 반란을 일으킨 마고스 형제를 처단한 7인은 앞으로 어떤 국가를 만들지 의논하였다. 의견은 셋으로 갈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나라와 과두정치, 그리고 군주제가 주장되었으나, 투표를 통해 군주제로 결정되었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를 주장했던 오타네스는 왕을 선출하는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의 가문이 자발적으로 왕과 국가에 충성하기로 하지 않을 때는 자유 가문으로 있도록 내버려달라고 요청하여 모두의 승인을 받았다. 그가 요청한 자유란 남을 지배하지도 않고 지배받지도 않으며, 함께 정한 법의 영역 가운데 서로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정치 조직을 이소노미아(isonomia)라고 불렀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이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의 공화정을 거쳐 근대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을 때, 서구인들이 사용한 언어에는 이런 평등 의식이 녹아 있었다. 민주주의가 이 땅에 꽃을 피우려면 왕국의 그림자를 가진 우리의 정치 언어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존대어가 위계 의식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우리 신앙인들도 정치적 함의를 가진 신앙의 어휘들이 정치의식에 주는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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