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시민의 덕성을 통해 진보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덕성을 통해 진보한다

[ 인문학산책 ] 45

김선욱 교수
2022년 01월 28일(금) 08:09

몽테스키외

사람은 모두 다 다르다. 생각도, 가치관도, 세상을 보는 눈도 다르다. 그 다름의 종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아서, 이를 그냥 다양성 혹은 다원성이라 표현하지 않고 복수성(複數性)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의 복수성 때문에 우리는 갈등과 분쟁을 경험하게 된다. 복수성 자체는 피할 수 없다 해도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은 다들 피하려고 한다. 물론 갈등과 분열로 이익을 얻는 자들은 빼고 말이다.

정치는 인간의 복수성을 전제로 한다. 인간이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 사는 길을 찾는 것이 정치의 일이다. 그래서 정치의 소식이 항상 대립과 갈등의 배경에서 전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동물의 일이고, 말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이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길이다. 지금부터 2300여년 전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이란 책에서 했던 말이다.

공적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 사적 이해관계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나오는 주장이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분하는 문제는 이처럼 수천 년 전부터 중요했고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개인이나 조직은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나름이다. 개인의 살림살이나 자영업, 사기업 등은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외 많은 집단도 그 설립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공적 영역은 사적 이익을 다투는 곳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동의 삶의 원리와 가치를 다투는 영역이다. 여기서도 다툼이 있지만 사적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다툼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사적 이익 다툼이 주도하게 되면 그것은 공적 영역의 타락을 의미한다. 공공성은 사적 이해를 초월하여 전체를 바라보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가치관의 대립이 이루어질 때 대화 참가자들은 근본 합의를 점검해야 한다. 근본 합의는 공동체의 지향과 가치를 담고 있다. 모든 공동체는 명시적이건 비명시적이건 근본 합의를 갖고 있다. 대학은 정관에, 교회는 교회 헌법에 그 합의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의 경우는 헌법이 근본 합의이다. 깡패 집단도 근본 합의를 갖고는 있으나 사적 이익을 중심으로 할 뿐이다.

한 국가의 근본 합의를 담고 있는 헌법은 인간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인간적 가치란 보편성을 가지므로 모든 헌법은 비슷하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각 나라의 헌법에는 정치 체제나 정부 조직 등 상당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 이유를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인간은 자연적·사회적 환경에서 삶을 영위하며, 국민은 그들의 독특한 기질과 환경을 배경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근대 국가에 한정해서 말하면, 헌법은 어떤 기질을 갖고 있는 국민이라는 집단이 국토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타민족과의 관계를 이루면서 갖게 된 특성과 가치를 담아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정은 개인으로 구성된 다수 시민의 뜻을 담은 헌법을 갖는다. 몽테스키외는, 민주정이 완성되려면 그 주체인 개인이 민주정에 걸맞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자질이란 시민의 덕성을 말한다. 민주정의 가장 큰 매력은 시민의 도덕적 위대함에 있다. 그런데 지난 인문학산책 33회에 썼던 것처럼, 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이라고 모두 덕이 있는 시민인 것은 아니다. 몽테스키외는 민주정이야말로 법 아래서 시민의 고도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라고 했다. 이런 민주정에서 시민이 법 아래서 안전과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우선 시민으로서의 덕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덕을 통해 진보한다.

다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서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정치 공동체가 선거의 시기를 맞으면 다름의 양상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당연하다. 다름이 분열과 갈라섬과 죽임의 정치로 나아가지 않으려면, 정치 공동체의 근본 합의를 지키는 덕을 갖춘 시민이 중요하다. 정치적 갈등을 사적 이익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행태는 가차 없이 비판할 줄 알아야 하고, 가치의 선택이 공공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민은 의지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려는 그리스도인일수록 시민의 덕성에 주목해야 한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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