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선교사가 없습니다"

"그곳엔 선교사가 없습니다"

[ 땅끝편지 ] 동티모르 이대훈 선교사 1. 동티모르 선교의 발원지

이대훈 선교사
2022년 01월 25일(화) 08:06
2005년 당시 지방의 시골 초등학교 광경.
하천의 길이는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인 하구에서 최장 1차수 간의 거리로 계측한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은 녹산 배수문 우안으로부터 국도노선을 따라 부산광역시 서구 하단동을 연결하는 하구(河口)선으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발원지를 추적한다. 낙동강 하구부터 발원지로 지명된 소백산 자락의 1442.3m 천의봉(天衣峰)까지 낙동강의 길이는 총 513.5km! 여기에 낙동강의 역사가 흘러내려온다.

2003년 12월 14일 파송예배를 드리고 시작을 준비하며 이내 다가온 2004년 1월 18일, 가족은 동티모르 선교를 위해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출발했다. 왜 동티모르가 아니고 '인도네시아'냐구요? 동티모르의 개신교회에서 당시(18년이 지난 지금도 부분적으로 번역된 쪽복음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전반적으로 인도네시아 성경을 사용함) 인도네시아 성경을 텍스트로 삼아 인도네시아어로 강단에서 설교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소통의 언어로 인도네시아어 준비를 위해 반둥(Bandung)에서 1년을 거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둥으로 향하기 전 자카르타(Jakarta) 인근 신도시 까라와치(Karawaci)에 머물면서 낙동강의 발원지와도 같은 한국교회의 동티모르 선교의 발원지를 발견했다.

당시 갓 독립(2002년 5월 20일)한 21세기 신생 독립국가 동티모르에서 건축 관련 일을 하던 한 성도에 의해 전달된 동티모르 소식들. 이 소식들은 성도가 출석하는 한인열방교회 담임 송광옥 목사님에게 전달되었고, 교우들에게 자극을 주며 그렇게 흘러 흘러 한국에서 일본선교를 준비하고 있던 필자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여 캠퍼스 전도와 기도모임에 열중하는 중 1987년도에 잦은 지진으로 신음하는 일본의 현상을 보면서 1988년, 4학년 1학기에 일본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했다. 그 이후로 일본은 영혼의 '빚진 자'로 앙망하는 나의 선교 대상지였다. 그러던 가운데 일본선교사로 대선배이신 목사님을 뵈었을 때, "일본 선교사가 되려면 목사가 되어 오십시오"라고 하신 말씀에 신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신대원에서 '일본선교회'까지 만들어 발족시켜 활동도 했었지만 정작 신대원 3년 동안의 고민과 갈등은 한 순간에 전환하여 일본이 아닌 동티모르로 향하게 되었다. 일본에 대한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일본하면 그 '빚진 자'의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신대원에서 각국의 선교사님들을 만나면서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고민과 갈등은 "선교지를 정하고 선교사로 가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내려놓고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까?"였다.

이때 내가 만나 대화를 했던 현장 선교사님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동일했다. "나는 전공이 중국어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중국어권이 아닌 영어권으로 보내셨습니다.", "나는 영어를 전공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중국어권으로 보내셨습니다." 등등. 즉 선교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순종해서 가는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의 전략으로 선교지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순종하느냐?'는 고민과 갈등은 "신생독립국가 동티모르에 선교사가 없습니다"라는 송광옥 목사님의 한 마디에 무너졌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으면 선교사가 필요한 곳에 가야하지 않겠는가?'라는 나의 마음에 쐐기를 박아 동티모르 선교사가 되게 한 결정적인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이었다.



이대훈 목사 / 총회 파송 동티모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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